‘튀니지언 걸’이란 이름의 여성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 시민들이 반독재 시위를 벌이고 있고(위), 폭동경찰의 총탄에 맞아 숨진 시민이 흘린 피가 길바닥에 흥건하다. 블로그 갈무리
23년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튀니지 민중의 ‘재스민 혁명’은 뉴미디어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아이티(IT) 혁명’이기도 했다.
블로그,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P2P(파일공유사이트) 같은 인터넷 기반 정보통신의 대중화는 한 청년실업자의 분신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의 불꽃이 당국의 언론통제와 군경의 무차별 진압에도 꺼지지 않고 들불처럼 번지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튀니지의 주류 언론은 지난달 튀니지 중부의 한 소도시에서 한 청년 노점상이 생계 보장을 요구하며 분신한 사건에 침묵했다. 이후 벌어진 시위 소식도 제도권 매체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약돼왔고, 대부분 국영 매체인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감도 컸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이번에 쫓겨난 벤알리 전 대통령을 세계 40대 미디어 살육자의 명단에 올 중 한 명로 꼽아왔다.
그러나 뉴미디어에선 사정이 달랐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전체 인구 1059만명의 튀니지에는 2009년 현재 975만여대의 휴대폰이 보급돼 있다. 인터넷 사용자도 350만명에 이른다. 휴대폰 메시지와 동영상,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시위 상황에 대한 정보와 의견이 실시간으로 소통됐다.
특히 ‘튀니지언 걸’이라는 한 블로거(atunisiangirl.blogspot.com)의 활약은 눈부셨다. 시위 현장과 시민들의 소망을 담은 수십장의 사진과 글들을 올렸다. 거리시위에 나섰다가 무장경찰의 총에 맞아 처참하게 피를 흘린 채 숨진 한 시민의 사진은 억눌린 민심을 폭발시켰다.
한번 불붙은 혁명의 기운은 그동안 철저히 재갈이 물렸던 말길도 활짝 틔워놓았다. 튀니지 국영 일간 <라프레세>의 만평가 로트피 벤사시는 19일 <에이피>(AP) 통신에 “내 나이 51살이 되도록 한번도 민주주의에서 살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을 하기로 작정했고, 말을 했다”며 감격했다. 그는 옛 정권의 수호자였던 편집 에디터를 이번 주 내내 편집국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는데 앞장섰다고 했다.
튀니스 시민 사이다 페르자니는 19일 “꿈을 꾸는 것 같다. 전 정권을 무너뜨린 건 인터넷과 페이스북 덕분이다”고 말했다. 영국 노스햄프턴대의 누르딘 밀라디 교수는 최근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에 “위성방송 기술의 발달과 무료 채널의 광범위한 보급도 아랍 국가들에서 정보 전파의 전환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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