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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아랍권 첫 시민혁명 ‘구체제 청산’ 힘겨운 첫발

등록 2011-01-19 19:34수정 2011-01-20 09:17

아랍연맹 “빈곤·실업으로 아랍국 유례없는 분노·혼란”
옛집권층 남은 새내각에 불신 높아…개혁까진 먼길
■튀니지 혁명 어디까지 번지나

“튀니지는 경제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표현·집회의 자유가 거의 없으며 인권 문제가 심각한 ‘경찰국가’이다.”

튀니스 주재 미국대사관이 2009년 7월 워싱턴에 보낸 외교 전문은 그로부터 18개월 뒤 일어날 시민혁명의 예고편 같다. “22년째 1인 통치가 지속되고 있으며 정권은 민중들과의 접촉이 없다. 집권층은 국내외의 비판을 용인하지 않으며 부패하고 있다. 국민들은 높은 실업률과 지역 차별에 분노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정권 안정에 대한 위험이 커지고 있다.” 반정부 시위 9일 만인 지난 14일 자인 엘아비딘 벤알리 대통령이 쫓겨난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이렇게 이미 예고돼 있었다.

극심한 생활고와 억압통치, 집권층 부패에 짓눌려온 튀니지 민중의 봉기가 국제 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20세기 중반 들어 아프리카와 아랍권에서 식민지 독립 투쟁이나 체제 변혁 투쟁, 민족주의 운동 등은 일부 있었으나, 쿠데타가 아닌 민중봉기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사례는 사실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1979년 이슬람혁명을 성공시킨 이란은 아랍 국가가 아니며, 22개국이 가입한 아랍연맹 회원국도 아니다.

인근 권위주의 국가들은 긴장하고 있다. 19일 이집트에서 시작된 아랍 경제정상회의에서 암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아랍의 정신은 가난과 실업과 경기후퇴로 무너지고 있다” “튀니지 혁명은 우리와 먼 얘기가 아니다” “아랍 시민들은 유례없는 분노와 혼란의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이례적인 경고를 퍼부으며 아랍 국가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하지만 혁명이 시작된 튀니지에서도 ‘앙시앵 레짐’을 대체할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옛 여권과 야권을 망라한 통합과도정부는 17일 23명의 새 내각 명단을 발표하고, 정치범 석방과 언론자유 증진 등 대대적인 민주화 조처를 약속했다. 6개월 안에 대선과 총선을 치르겠다고도 했다.


문제는 모하메드 간누시 총리를 비롯해 옛 집권당인 입헌민주연합(RCD) 출신 인사들이 과도정부에서도 총리, 국방, 외무, 내무 등 핵심 각료직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18일 수도 튀니스에선 시민 수천명이 항의시위에 나서는 등 반발이 커지자 푸아드 메바자 대통령과 간누시 총리 등 4명의 각료는 “당-정 분리를 위해” 입헌민주연합에서 탈당을 선언하고 입헌민주연합도 벤알리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 6명을 제명했다. 하지만 19일 아랍 경제정상회의에 참석차 이집트에 도착했던 튀니지 외무장관 카멜 모르잔은 이날 회의 시작 직전 이집트를 떠났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해 내각 상황이 요동치고 있음을 시사했다.

영국 더럼대의 에마 머피 교수(정치학)는 18일 <비비시>(BBC) 기고에서, 튀니지가 대대적인 개혁을 하면서도 안정을 유지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정국 불안정과 치안 부재가 지속될 경우 외국자본 유출과 관광수입 격감이 우려되며, 벤알리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장악하고 있던 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안정과 개혁에 대한 확신을 위해선 조기 총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을 해체하기 위한 구체적 개혁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선거를 치를 경우 또다른 혼란을 낳을 수 있다. 현재 튀니지 의회는 전체 214석 중 입헌민주연합 소속 의원이 161석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정치개혁으로 얻을 게 없는 벤알리 지지세력의 반발도 변수로 남아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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