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관리 “카르자이 승리땐 논란일 것”
지난 20일 실시된 아프가니스탄 대선이 대규모 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리면서 정국이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선거 참관자들로부터 입수한 초반 개표 결과,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이 72%를 득표해 경쟁 후보인 압둘라 압둘라 전 외무장관(23%)을 압도적 표차로 따돌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3일 보도했다. 그러나 압둘라 후보는 이날 사전투표와 투표수 부풀리기, 협박 등 100건 이상의 선거부정 사례가 접수됐다며, 카르자이 대통령의 압승이 선언될 경우 법적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선 과정을 지켜본 유엔 관리도 “카르자이의 승리가 선언될 경우에 정통성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고, 국제사회가 이를 인정한다면 국제사회도 신뢰성을 잃게 될 것”이라며 “선거부정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아프간의 장래에 대한 해법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다수를 차지한 선거부정감시위에는 이날까지 225건이 접수됐다.
선거부정을 둘러싼 공방은 아프간 개입의 명분을 잃어가고 있는 미국뿐 아니라 서방 주요국가들에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마이클 멀린 미 합참의장은 “아프간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탈레반 반군이 더욱 정교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며 군사적으로도 곤경에 처해 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아프간을 방문중인 리처드 홀브룩 아프간 특사는 “일부 잘못이 있었고, 미국에서도 그런 일이 있다”며 선거부정 논란의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그는 “이번 선거가 탈레반의 선거 방해에도 불구하고 원만히 치러졌다”며 “공식집계 이전에 논란이 있더라도, 우리는 선출된 정부와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간단치 않다. 유엔의 한 고위 관리는 “유일한 해법은 깨끗한 2차 투표를 실시하든가, 압둘라와 카르자이 쪽이 일종의 화해협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영국의 <가디언>이 보도했다. 압둘라 진영에서는 카르자이가 아프간을 더 이상 자기 식대로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의회에 권한을 부여하는 헌법 개정을 통해 권력을 분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시 행정부와는 달리 카르자이 대통령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는 꼬여가는 아프간 상황 때문에 더욱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됐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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