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아프간 전략 걸림돌로
이달 초 파키스탄 북부의 아프가니스탄 접경 와지리스탄. 파키스탄 탈레반 최고지도자 바이툴라 메수드(39)가 야음 속 은신처로 인근 부족장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이 모임에서 “나는 정부와 전쟁 중”이라고 선언했다. 숄을 뒤집어쓴 그의 얼굴은 횃불과 휴대폰 불빛에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는 앞서 며칠전 파키스탄 라호르 경찰학교 테러와 전날 발생한 미국 뉴욕 이민자센터 총기난사 사건을 미국의 무인기 공습에 대한 자신들의 보복공격이라고 주장하며 “다음 차례는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파키스탄 탈레반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략의 최대 걸림돌로 급부상하고 있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최근 핵심 거점인 아프간 접경 북서변경주의 스와트 계곡에서 동쪽 내륙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불과 160㎞ 떨어진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바짝 조여오고 있다. 지난 주에는 이슬라마바드에서 차로 1시간 남짓 거리인 부네르에서 처음으로 탈레반과 경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져 5명이 숨졌다. 또 10일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물류기지가 있는 페샤와르에서는 군납용 기름을 가득 실은 유조차 6대가 탈레반의 공격을 받아 불길에 휩싸였다.
파키스탄 정부는 지난 10일 이슬라마바드에 최고경계령을 발동했다. 각급 학교가 문을 닫고, 외국 공관 직원들의 외출 자제령이 내려졌으며, 시내 곳곳에 보안군이 추가 배치됐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11일 전했다. 미국 정부는 바이툴아 메수드의 목에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러나 메수드는 “최소한 일주일에 두 차례의 보복 공격”을 다짐했고, 탈레반 고위 지휘관은 “무자헤딘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며 “미국이 무인기 공습을 계속하면 이슬라마바드를 접수하겠다”고 위협했다. 부네르 지역 경찰 관리는 “지난주에 탈레반 조직원이 탄 20여대의 차량이 부네르에 들어왔으며 시장과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의 전직 장성 출신인 보안 전문가 탈라트 마수드는 <알자지라>에 “모든 진입로를 통제하기는 어려운데다 이들 무장세력은 매우 단호하다”면서 “탈레반 무장세력이 수도에 쉽게 잠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파키스탄 정부와 탈레반의 스와트 평화협정마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양쪽의 평화협상을 중재했던 이슬람율법실행운동(TNSM) 지도자 수피 모하메드는 9일 중앙정부의 평화협정 서명 지연에 항의해 협정 결렬 가능성을 경고하고 스와트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양쪽은 지난 2월 탈레반이 국경지대 북서변경주 스와트 협곡에서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의한 통치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맺었다. 미국 등 서방은 파키스탄 정부가 탈레반에 사실상 굴복했다고 거세게 비난했고,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협정 서명을 미루고 있다.
자르다리 대통령은 지난 8일 영국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의 일상적인 부침이 정국안정성 결여로 해석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한 뒤, “파키스탄에서 빈곤과 무장세력은 상호연관돼 자라난다”며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 확대를 촉구했다.
미국은 아프간의 인접국이자 탈레반 주축세력인 파슈툰족의 영향력이 강한 파키스탄을 아프간 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삼으려 하고 있다. 나토 등 동맹국이 아프간 병력 증파에 적극적이지 않은데다, 무력 사용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르다리 정부는 파키스탄의 대부분 지역에서 실질적인 통치권을 장악한 탈레반의 위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의 아나톨 리벤 교수는 지난 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쓴 ‘미국에게, 문제는 파키스탄이다’란 제목의 기고에서 “파키스탄 주민 대다수는 정부가 미국의 탈레반 진압을 돕는데 거세게 반대한다”며 “파키스탄 정부는 이런 여론을 간단히 거스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주 일요판 ‘옵서버’에서 “이젠 바이툴라 메수드가 미국의 공공의 적 제1호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메수드의 가장 큰 성과는 무슬림 세계에 흩어져 있던 군벌과 알카에다 잔여세력을 규합해 파키스탄의 지하드 네트워크를 복원시켜 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미적거리는 파키스탄 정부를 압박하고 있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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