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집권당 해산과 정파 투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간신히 모면하면서 정국 격동의 한 고비를 넘었다.
터키 헌법재판소는 30일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이 정교분리 원칙을 어기고 사회 전반에 이슬람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는 이유로 검찰이 정당 해산과 소속 정치인의 정치활동 중지를 요청한 위헌소송에서 집권당의 손을 들어줬다고 <에이피>(AP) 등 외신들이 긴급타전했다. 터키는 친이슬람 성향의 정부여당과 엄격한 세속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사법부 및 군부 엘리트집단가 충돌을 빚어왔다.
헌재는 심리를 개시한 지 사흘만에 이례적일만큼 신속하게 중대 결정을 내놨다. 법원은 그러나 경고의 의미로 정당지원금의 절반을 삭감하는 조처를 취했다. 하심 킬리치 수석재판관은 “11명의 재판관 중 6명이 집권당의 해산에 찬성해, 위헌 청구 결정 요건인 7명에 못미쳤다”며, 그러나 “이번 결정은 (집권여당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에 대한 ‘형 집행연기’에 해당하는 셈이다. 헌재가 집권당의 해산을 결정했다면 터키는 엄청난 정치적 격변에 휩싸이게 될 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이미지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에이피>는 지적했다. 정의개발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득표율로 단독정부를 구성했을 만큼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데다, 유럽연합 회원국의 지도자들도 집권당의 정치적 운명은 법원이 아닌 선거로 결정돼야 한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터키 헌재는 1963년 설립 이래 지금까지 20여 차례나 정당 해산 결정을 내렸을만큼 세속주의 원칙에 기반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이번 위헌 심리에서는 현 집권당의 높은 지지도, 유럽연합 가입 추진, 쿠르드 반군의 분리독립운동 등 나라 안팎의 복잡한 여건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으로 에르도간 총리가 이끄는 정부와 집권당도 한숨 돌리긴 했지만, 앞으로는 이전과 같은 과감한 친이슬람적 행보를 강행하는 데에는 제동이 걸렸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