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야당 대선후보 츠방기라이.
“부정선거” 보이콧 하루만에…경찰 야당사 진입
라이스 미 국무 등 국제사회 무가베정권 비난
라이스 미 국무 등 국제사회 무가베정권 비난
짐바브웨의 계속된 정국불안에 민주주의가 마비되고 있다. 지난 3월 대선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야당 민주변화동맹(MDC)의 후보 모건 츠방기라이 총재가 23일 수도 하라레의 네덜란드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결선투표 불참 선언 하루만의 일이다.
네덜란드 외교부 당국자는 츠방기라이가 대사관에서 하룻밤을 보냈으며, 계속 머물며 “다음 단계 조처에 대해 고심중”이라고 밝혔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츠방기라이의 ‘이례적’인 피신은 민주변화동맹 쪽의 요청에 따른 조처로 알려졌다. 망명 신청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지만, 지난 몇주동안 다섯 차례나 경찰에 구금되며 고조된 그의 위기감은 극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츠방기라이는 앞서 22일 기자회견에서 “이처럼 폭력적인 상황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27일로 예정된 대선 결선투표에 불참을 선언했다. 이는 상대 후보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정권의 선거 방해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야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주민 86명이 살해되고, 20만명이 ‘부랑자’ 신세로 전락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23일에는 경찰이 당사에 들이닥쳐, 피신해 있던 여성·어린이 등 60여명을 끌고 갔다. 츠방기라이는 “야당 후보에게 투표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투표권을 행사하라고 할 수 없다”며 유엔과 아프리카 등 국제사회의 개입을 요청했다.
국제사회의 비난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공정 선거 없이 무가베 정권을 합법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자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정책의장은 짐바브웨의 최근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의 폭력”이라고 비난했다.
그동안 짐바브웨의 선거부정을 수수방관해 온 아프리카 국가들도 무가베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의 의장국인 잠비아의 레비 무아나와사 대통령은 “아프리카개발공동체가 짐바브웨 사태에 침묵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결선투표의 연기를 촉구했다.
무가베의 짐바브웨아프리카동맹-애국전선(ZANU-PF)은 이날 “츠방기라이가 치욕적인 패배를 피하려고 사퇴한 것일 뿐”이라며 결선 투표 강행 뜻을 밝혀, 정국은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현재 무가베를 대통령으로 공식 승인하지 않는 것 외에, 딱히 무가베를 압박할 ‘지렛대’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더 강력한 수단을 찾아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군사행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제 제재도 거론되지만, 짐바브웨가 이미 극심한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국민들의 고통만 심화시킬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정애 김외현 기자 hongbyul@hani.co.kr
선거를 치른지 3달가량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당선자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는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 시내에, 야당 민주변화동맹(MDC)의 후보 모건 츠방기라이 총재의 사진 현수막이 23일에도 걸려있는 모습이 찍혔다. 하라레/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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