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사마라 지역의 시아파 최대 성소 아스카리야 사원. <한겨레> 자료사진
이라크전 이후 도굴 판쳐…군용차량 눌려 유적도 손상
‘문명의 요람’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적들이 증발하고 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가 17일 보도했다. 이라크전 이후 급속히 늘어난 도굴과 대규모 군대의 주둔이 그 ‘주범’이다.
도굴꾼들은 이라크 남부 ‘우르’ 지역으로 몰려들어, 적어도 13개 박물관에서 유물을 약탈하는 등, 고대 유적지를 장악하고 조직적인 약탈을 일삼고 있다. 도굴 피해를 장기간 조사해 온 고고학자 조안 파르자흐는 “도굴꾼들이 수천년 동안 모래 아래 묻혀 있던 수메르 도시의 유산들을 단 1m도 남기지 않고 파가고 있을 정도”라고 심각한 상황을 전했다.
이 지역에는 설형(쐐기)문자판과 조각, 장신구 등 인류의 과거 유산들이 대거 매장돼 있다. 도굴꾼들은 금이나 보물 등 돈 되는 것을 찾는 과정에서 유물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인디펜던트〉는 17일 “알렉산더 대왕은 도시를 파괴한 뒤 새 문명을 건설했지만, 도굴꾼들은 바닥까지 전부 파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굴단에는 사담 후세인 집권 시절 고고학자로 양성된 이들까지 대거 참가하고 있다. 이들은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발굴한 유물들은 트럭· 비행기·선박을 이용해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개인 수집가들에게 팔아넘기고 있다. 현재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7천년 전 메소포타미아 예술품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중무장한 군대 또한 유적 파괴에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
‘헤이그 의정서’는 유적지에 군 기지를 세우는 것을 금지하나, 미군과 동맹군은 2003년 4월 이후 바빌론 등 적어도 7곳의 유적지에 기지를 만들었다.
이 가운데는 시아파 최대 성소인 아스카리야 사원이 있는 사마라도 포함돼 있다. 2003년 공습 때 손상을 피했던 유적들은 육중한 군용 차량에 눌려 금이 가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런데도 미군은 유적지를 경비하기 위해 기지를 지었다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파르자흐는 “전쟁 상태가 길어진다면, 인류의 문화유산에 대한 위협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이 배우게 될 것이 남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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