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보름에 걸친 인질협상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국 한국 정부와 대면협상을 앞둔 탈레반이 여러 `옵션'을 내걸며 적극적이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여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탈레반은 3일 연합뉴스와 간접통화에서 "병세가 위중한 여성 2명이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며 일단 `2대2 맞교환'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간 탈레반이 지역 사령관급 수감자 8명의 명단을 제시하며 `8대8 교환'을 협상안으로 내세웠었던 점을 감안하면 한 발 물러선 제안인 셈이다.
이어 탈레반은 한국과 대면협상 문제에서 장소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면서도 유엔의 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카불, 아프간 정부건물, 대통령궁, 심지어 미군 기지에서도 협상을 할 수 있다고 유화적인 자세를 보였다.
탈레반은 또 한국 정부가 괜찮다면 자신들이 관할하는 아프간 남부지역에서도 양자 대면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다 됐다고 선택의 폭을 넓혔다.
`이 곳이 아니면 안된다'는 식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고집을 피우며 시간을 끌 수 있는 데도 가장 민감한 문제인 장소 문제에서 유연성을 보인 것이다.
탈레반이 인질 납치 초기에 비해 일단 상당히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인질 수가 20명이 넘는 탓에 자신들도 사태 장기화에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점쳐진다.
납치를 일삼는 탈레반으로서도 이번 인질 규모는 최대규모인데다 중환자까지 발생한 것이 확실하고 인질을 분산하다 보니 이를 나눠 억류하는 지역 조직의 요구사항이 충돌, 조직에 부담이 가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인질을 2명이나 살해해 결국 다급해진 한국 정부를 협상 테이블까지 끌어 들이는 데 성공한 탈레반이 협상에 적극적인 사인을 보내는 것은 추가 인질 살해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해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한국 정부와 대면 협상이 성사 직전인 상황에서 추가로 인질을 살해한다면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과 국제사회의 여론이 강경한 방향으로 급선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주장대로 `사망하기 직전'이라는 여성 인질 2명의 선(先) 교환안을 협상에 임박해 내놓은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또 협상에 유엔을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이를 국제적인 문제로 확대해보려는 속셈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
`적진'에서 대면 협상이 이뤄질 경우 자신들의 안전을 보다 중립적인 기구에서 보증받으려는 표면적 이유도 있지만 유엔이 개입하도록 하면서 `정권 재탈환'이라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국제사회에 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몰락한 일개 테러조직으로 낙인된 탈레반 입장에선 한국 정부 대표의 협상 상대가 되면서 자신들의 위상을 범죄집단에서 `정부급'으로 격상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 유엔의 개입까지 불러올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아울러 유엔의 안전 보장까지 요구한다는 점으로 미뤄 탈레반은 한국 정부와 대면협상이 이뤄진다면 조직 최고위급의 협상 참석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 (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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