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기 30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남녀 인질 12명의 모습을 방영했다. 인질들 중 여성들은 차도르나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채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뒷줄 가운데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경자, 안혜진, 이정란, 유정화씨로 추정된다. <알자지라> 화면 촬영
8명 신원 공식확인…캄캄한 실내서 촬영 장소 숨겨
육성 공개보다 더 강렬…수감자 석방 재촉 ‘메시지’
육성 공개보다 더 강렬…수감자 석방 재촉 ‘메시지’
알자지라, 인질12명 동영상 공개
<알자지라> 방송이 30일 오후 10시께 공개한 피랍자 동영상에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12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아프간 국경 밖에서 구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 방송사는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녹음된 소리도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인 인질들은 가만히 서 있거나 앉은 자세였고,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여성들은 차도르나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채 조용히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한적으로 비추고 있는 조명 탓에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여성들뿐이다.
알자지라가 공개한 여성 인질들 영상
■ 동영상 면면=피랍자 가족모임은 31일 새벽 동영상에 등장한 여성 인질 8명의 신원을 공식 확인했다. 차성민(30) 대표는 앞줄에 앉은 5명이 임현주(32), 한지영(34), 유정화(39), 이정란(33), 안혜진(31)씨이며, 뒷줄에 선 3명은 (오른쪽부터) 김지나(32), 김경자(37)씨라고 말했다. 피랍자 제창희(38)씨의 누나인 미숙(45)씨는 맨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이 “동생이 입고 있던 옷을 입고 있다”고 말했으나, 살해된 심성민씨가 같은 차림으로 발견돼 혼란을 주고 있다.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여성 인질들의 얼굴만 비추며 2~4초 동안 클로즈업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맨오른쪽에 서 있는 인물이나, 붉은 태극기 문양의 조끼를 입은 인물의 얼굴은 일부러 카메라에 잡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대 이종화 교수(인질협상 전공)는 “여성들이 동정심을 사기에는 훨씬 유용하기 때문에 여성만 확인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촬영 장소는?=동영상은 캄캄한 실내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유일하게 사용된 조명은 김경자씨의 허리 부분을 비추며 고정돼 있고, 뒷줄에 선 사람들은 빈틈 없이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이 때문에 배경으로 촬영 장소를 파악하기는커녕, 뒷줄에 선 사람들의 얼굴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카메라 렌즈는 앞쪽 인질들의 상체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 바닥 상태도 알 수 없다. 이는 촬영 장소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탈레반의 의도적 조처로 해석된다. 무력진압에 대한 우려로 촬영 장소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언론 접촉에서 인질들을 계속 이동시키고 있다는 탈레반 쪽의 언급과도 일치한다.
■ 인질들의 차림새=여성 인질들은 모두 히잡·차도르가 머리에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목 아래의 매듭을 꼭 부여쥔 모습이었다. 이들이 붙잡힐 당시부터 이런 차림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탈레반이 이런 모습으로 동영상을 촬영한 것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중동 문제 전문가인 공일주 요르단대 교수는 “히잡의 착용은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의 종교적 의무”라며 “이슬람 국가에 왔으니 이슬람 전통을 따라야 하며, 이슬람이 다른 어떤 문명보다도 우월하다는 탈레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 국가 가운데서도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 등 이슬람주의를 강조하는 나라에서는 여성들에게 히잡 등 가리개 착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했다. 외국인 여성 방문객들도 반드시 이를 착용해야 한다.
공개 의도=협상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쥐고 있음을 부각하려는 탈레반의 언론플레이가 한층 강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동영상은 육성보다 한층 더 호소력을 갖는다. 피해자 가족과 한국 국민, 그리고 정부에 대해 자신들이 요구하는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나서라는 채찍질인 셈이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알자지라 인질 동영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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