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각) 이란 테헤란에서 한 남성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 소식이 담긴 신문을 들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며 혼란했던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안정을 찾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다만, 중동의 앙숙이었던 두 나라의 화해가 ‘중국’의 중재로 이뤄지며 미국의 지역 내 영향력 추락을 예견하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란을 ‘숙적’으로 여기는 이스라엘 역시 큰 낭패에 빠지게 됐다.
중동 질서를 좌우하는 지역 내 두 강국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10일(현지시각)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2개월 안에 양국 대사관을 다시 여는 등의 내용을 담은 관계 정상화 안에 합의했다. 중재국인 중국과 함께 세 나라의 명의로 낸 이날 성명에서 이란과 사우디는 6~10일 베이징에서 열린 협의를 통해 이같이 합의하고 “주권을 존중하고 국내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또 과거 체결했던 안보협력협정과 무역·경제·투자에 관한 협정도 되살리기로 했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애초 섞이기 힘든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다. 특히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자신들의 혁명 이념을 국외에 확산시키려는 이란의 움직임을 사우디 등 수니파 왕정 국가들은 심각한 체제 위협으로 여겨왔다.
이 대립이 결정적으로 악화된 것은 2016년이었다. 그해 1월 초 사우디가 반정부 시아파 성직자 등을 테러 혐의로 처형한 뒤, 분노한 이란 시위대가 주이란 사우디 대사관을 습격했다. 이후 사우디는 이란과의 국교를 끊었다. 이 여파는 중동 지역 전체로 번졌다. <비비시>(BBC)는 “양국은 서로를 중동 지역 내에서 가장 위협적인 세력으로 규정하고 레바논·시리아·이라크·예멘에서 견제 세력을 지지해왔다”고 설명했다.
그 때문에 이번 결정이 중동 내 긴장 완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10년 가까이 계속되는 예멘 내전에 긍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2014년 시작된 이 내전은 예멘 정부를 지지하는 사우디와 후티 반군의 편을 드는 이란 사이의 ‘대리전’으로 변한 상태다. 이 발표 이후 아랍에미리트·오만·카타르·이라크·이집트 등은 물론이고, 후티 반군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도 환영 목소리를 냈다.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무사드 빈 모하메드 알아이반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보좌관(왼쪽)과 알리 샴카니 이란 국가안보회의 의장(오른쪽)이 중국 외교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가운데 두고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이스라엘은 난감한 처지가 됐다. 지난해 말 재집권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을 ‘실존적 위협’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잠재적 파트너’로 자리매김시켜왔다. <뉴욕 타임스>는 이 발표가 “이란에 맞서 지역 안보 동맹을 형성하려던 이스라엘의 희망을 허물었다”고 전했다.
나아가 이 합의는 중동을 둘러싼 미-중 간 세력 균형을 일거에 흔드는 폭발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은 10일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앙숙’이던 무사아드 빈 무함마드 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과 알리 샴하니 이란 국가안보회의 의장을 중재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미국은 이란과는 2018년 5월 이란 핵협정 일방 파기, 사우디와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와 원유 증산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다. <로이터> 통신은 이 발표가 “깜짝 합의”라며 “미국이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한 지역에서 중국이 평화 중재자의 역할을 하며 미국의 관리들을 불안하게 했다”고 짚었다.
백악관은 합의를 환영하면서도 중국의 역할은 평가절하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10일 “동력이 무엇이었든, 누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든 상관없이 협상이 유지될 수 있다면 환영한다”며 “우리(미국)가 중동에서 물러나고 있다는 생각은 강하게 거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잰 멀로니 브루킹스연구소 외교정책 담당 부국장은 <워싱턴 포스트>에 “사우디가 바이든 행정부의 뺨을 한번 더 때린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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