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일대의 모습. 산불로 인한 연무에 덮혀서 어둠이 깔려있다. AP 연합
미국 서부에 ‘핵 겨울’이 도래했다. 원래 핵 겨울은 냉전시대 핵 전쟁이 야기하는 인류종말의 음울한 상징이었으나, 최근의 핵 겨울은 인류 최대 위기인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됐다.
9일(현지시각) 오전 11시 미국 서부의 상징인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일대는 여명의 새벽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정오가 목전인데도 주위는 오렌지색 어둠으로 덮여 있었다. 다리 위,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 불빛이 주변의 연기를 물들였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동쪽으로 200㎞ 떨어진 내륙 오로빌의 ‘비드웰 바 다리’는 성탄절 전야를 수놓은 도심의 조명으로 둘러쌓인 듯 붉었다. 주변 산림을 태우는 강렬한 불길이었다. 오후가 되자, 그 풍광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인류가 지구를 떠나기 직전 옥수수밭 등을 태우며 건조한 연기를 뿜어내는 장면처럼 바뀌었다.
9일 미국 캘리포니아 오로빌의 ‘비드웰바 다리’ 주변에서 번지는 산불들. <뉴욕 타임스> 사진
오로빌 지역을 삼키고 있는 화마는 캘리포니아 북부의 주도 새크라멘토 북쪽에서 8일 발화한 ‘베어 화재’가 급속히 번져 북상했다. 베어 화재는 현재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번지는 ‘북부 복합 화재’의 일부다. 지난 8월 중순 시작된 ‘북부 복합 화재’는 현재까지 1027㎢를 불태우고 있고, 화재 지역의 38%에 봉쇄령이 내려졌다.
이 북부 복합 화재가 샌프란시스코 등 캘리포니아 북부 전역을 덮는 연무 사태의 한 원인이다. 베어 화재의 연기는 공기가 얼어붙는 고도인 1만2200m까지 치솟아, 캘리포니아 북부 일대에 재와 얼음이 뒤섞인 거대한 구름을 형성했다. 이 구름이 최근 이틀 사이에 이 지역을 오렌지색이거나 회색의 어둠으로 바꾼 주범이다. 샌프란시스코 일대는 오후 2시가 넘어도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뉴욕 타임스>는 핵 폭발 뒤 핵 먼지가 뒤덮는 ‘핵 겨울’이 찾아왔다는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의 한탄을 전했다.
미국 서부 전역은 현재 ‘불바다’다. 캘리포니아는 전역에서 22곳 이상의 대형 산불과 들불이 번져, 1만120㎢ 이상을 태우고 있다. 남한 면적의 10%가 넘는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거의 20배 이상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캘리포니아 북쪽의 오리건 주에서도 35건의 산불이 계속되며, 1500㎢가 소실됐다. 오리건에서는 특히 8일 애시랜드에서 발화될 ‘알메다 드라이브 화재’가 미국토의 대동맥인 주간고속도로 5번을 따라서 번지며, 올 들어 최악의 위험한 화재로 커지고 있다. 주변 도시의 주민 8만2천명이 소개됐고, 적어도 600채의 주택이 파괴됐다.
전국부처합동화재센터(NIFC)는 8일 현재 미국 태평양 연안 3개주에서 96건의 산불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87건이었다.
캘리포니아 시에라네바다 산맥에는 최근 3년 동안 극심한 가뭄으로 말라버린 수백만 그루의 폐목들이 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섭씨 50도에 가까운 열파가 몰아친 고온 탓에 작은 불씨 만으로도 급속히 화재가 번지고 있다. 특히, 최근 유례없는 강풍까지 동반돼, 산불과 들불들이 거침없이 주변으로 옮겨붙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뭄과 고온, 강풍이 삼박자로 어우러져 핵 겨울을 방불케하는 미국 서부의 올 여름 기후는 지구온난화의 시작일뿐이라고 경고한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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