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앞으로 연방기관이 비용 절감을 위해 자국 노동자 대신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실업률이 높아진 상황에서, 특히 비이민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소지자들에 대한 고용을 까다롭게 규제하며 경쟁력 있는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백악관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행정명령 서명 전 기자들과 만나 “나는 오늘 연방기관들이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매우 간단한 룰을 따르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값싼 외국인 노동력을 취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미국인들을 해고하는 걸 용인치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백악관이 공개한 행정명령에는 모든 연방기관이 자격을 갖춘 미국인 노동자들을 외국인 노동자들로 대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도록 내부 감사를 마쳐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연방기관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아웃소싱하기 전 미국 시민 및 영주권자를 우선 채용하도록 한 것으로, 이번 행정명령이 특히 비이민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 소유자를 겨냥한 것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미 언론들은 이와 관련 미국 노동부가 조만간 H-1B 비자 소지 외국인 노동자가 미국 노동자를 대체하는 일자리로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한 지침을 마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행정명령에 서명한 날, 트럼프는 연방정부 소유 기업인 테네시강유역개발공사(TVA) 이사회의 스킵 톰슨 의장과 리처드 호워스 이사를 해임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곳이 최근 기존 직원들이 수행하던 컴퓨터·소프트웨어 개발 업무의 20%를 외국에 본사를 둔 기업에 아웃소싱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조처로 200명 이상의 미국 숙련 기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고 백악관은 설명했다. 트럼프는 “이것(톰슨 의장 등의 해임)은 연방정부가 임명한 이사회에 대한 경고”라며 “미국 노동자들을 배신하면 ‘당신은 해고야’라는 두 단어를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실업률이 치솟는 등 경기침체가 깊어지자, 미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이민·비이민 취업비자에 대한 제한 조처를 강화해왔다. 4월22일 미 영주권 발급을 60일간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게 대표적이다. 또 6월22일에는 H-1B 등 외국인 노동자의 미국 취업비자 발급을 올 연말까지 중단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민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이번 조처가 외국인 노동자 대신 미국인의 고용을 늘리는 효과로 쉽사리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피비에스>(PBS) 방송은 전했다.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의 경우 고도의 숙련도를 요구해 인력 대체가 쉽지 않은데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로 사라진 일자리는 레저·접객 부문이나, (H-1B 비자와는 상관이 없는) 가스·석유 업계 등에 집중돼 있는 탓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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