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바다주 헨더슨에서 7일 자원봉사자들이 식료품이 부족한 주민들에게 나눠줄 음식을 포장하고 있다. 헨더슨/AP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확산) 이후, 미국 어린이 5명 중 1명이 충분한 영양 섭취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현대사에 전례 없는 식량 불안정(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식품을 구매하거나 섭취할 수 없는 상태) 상황이 고조되는 가운데, 민주당과 공화당이 푸드스탬프(영양 지원 보조 프로그램·SNAP) 예산 확대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맞붙고 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6일 12살 이하 자녀를 둔 미국 가정 17.4%가 돈이 없어 아이들을 충분히 먹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대침체기 당시(5.7%)보다 크게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경제봉쇄 조처로 3천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어 식료품 살 돈이 부족해진데다, 학교마저 문을 닫아 급식을 먹지 못하게 된 것 등이 영향을 미쳤다. 로런 바워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며 “미국 정부가 나서서 식량 안정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수혜 대상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연구 결과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푸드스탬프 예산 확대 문제를 놓고 이견을 보이는 가운데 나왔다. 민주당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부양책의 하나로, 한시적이나마 푸드스탬프 혜택을 15%가량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푸드스탬프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을 굶주림과 영양실조, 빈곤으로부터 구제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사회안전망’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2009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푸드스탬프 혜택을 14%가량 높인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도 비슷한 조처를 취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강하게 반대한다. ‘한시적 조처’라는 말은 수사일 뿐, 민주당이 이번 위기를 푸드스탬프 수혜자 확대 기회로 삼으려 한다고 본다. 공화당에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푸드스탬프 등 혜택에 기대는 도덕적 해이 상태에 빠지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민주당의 예산 확대 주장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추진해온 푸드스탬프 수혜자 자격요건 강화 정책을 막기 위한 조처라며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복지에서 벗어나 일터로 돌아가게 하겠다”며 지난해 말 18~49살 사이 피부양자가 없는 신체 건강한 성인에게서 푸드스탬프 수혜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강화된 자격 규정은 4월1일부터 적용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규정 적용이 연기된 상태다.
<뉴욕 타임스>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만큼, 푸드스탬프 예산 확대 방안이 통과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다른 코로나19 관련 법을 둘러싼 정치적 거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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