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1946~1965년 출생 세대) 부모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거나 모시고 살아야 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가 증가하고 있다고 2일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뉴욕 맨해튼 첼시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영화제작자 샨피에어 리지스(35)는 6월부터 어머니(78)와 함께 살기로 했다. 보스턴에서 파트타임으로 청소 일을 하던 어머니가 코로나19 사태로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당장 집세도 못 낼 형편이 됐기 때문이다. “(나도, 어머니도) 둘 다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호텔 객실 청소부로 시작해 관리직으로 3년 전 은퇴할 때까지 40년 넘게 일했다. 하지만 싱글맘으로 두 아들을 키우느라 ‘은퇴 자금’을 모아 둘 여력이 없었다. 기업퇴직연금(401k)은 2002년 리지스의 대학등록금으로 헐어 얼마 남지 않았고, 파트타임 청소 일로 근근이 살아왔는데 그마저 끊긴 것이다. 실직 당시 어머니 통장 잔고는 600달러(73만원)에 불과했다. 리지스의 어머니가 기댈 건, 아들뿐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2일 리지스의 사연을 전하며 ‘베이비붐 세대’(1946~1965년 출생 세대) 부모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거나 모시고 살아야 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가 증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는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캥거루처럼 부모에게 얹혀사는 밀레니얼 세대의 모습이 부각돼왔는데, ‘역캥거루’ 현상도 만만찮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의 인구 분석 결과를 보면, 2017년 자기 집이 아닌 곳에 사는 성인 중 14%는 가구주의 부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20여년 전인 1995년(7%)보다 2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로 인해 2세대 이상이 한집에 사는 확대가족 비율이 1980년 최저점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들어 고점기인 1950년대 20% 수준에 가까워졌다. 확대가족 형태 가운데 2030 자녀들이 중년층 부모의 집에 사는 경우가 여전히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최근 들어 부모가 자녀 집에 들어와 사는 경우도 눈에 띄게 늘었다는 지적이다. 퓨리서치센터는 “베이비붐 세대가 준비되지 않은 은퇴에 나서면서 이런 추세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스턴 칼리지 은퇴연구센터는 이런 조사 결과에 더해, 현재 노동자들 절반가량이 은퇴할 때까지 평균적인 삶을 유지할 만큼의 자금을 모으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퇴자협회 공공정책연구소는 2030년 미국인 5명 중 1명이 65살 이상이 될 것이라며, 이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접근 가능한 적당 가격대의 주택 부족 현상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젊은 세대가 이런 추세를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미 전역에 고객을 두고 있는 재정설계사 조지아 리 허시는 “내 고객들 대부분은 재정계획을 세울 때 염두에 둬야 할 부모가 최소 1명은 있다”며 “문제는, 일부 가정이 계획 없이 이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미국 사회, 특히 백인 문화권에선 자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앗, 내가 아버지(혹은 어머니)를 돌봐야 할 상황이네’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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