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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넷 중 한명 실직자…네온사인 꺼진 라스베이거스

등록 2020-04-28 15:58수정 2020-04-28 20:01

레저·접객업이 전체 경제 3분의 1 차지
코로나19 사태로 35만명 실업수당 신청
대공황 때 2배 수준 “준거 틀조차 없어”
지난 19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한 카지노의 모습. 코로나19로 영업이 중단되면서 24시간 사람으로 북적이던 카지노에 인적이 끊겼다. 라스베이거스/AP 연합뉴스
지난 19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한 카지노의 모습. 코로나19로 영업이 중단되면서 24시간 사람으로 북적이던 카지노에 인적이 끊겼다. 라스베이거스/AP 연합뉴스

하나, 두울, 셋, 넷…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사는 주부 발리시아 앤더슨은 지인 가운데 최근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헤아려보다가 이내 그만 뒀다. ‘리오 호텔 앤 카지노’ 내 유명 멕시코 식당에서 일하다 지난달 16일 실직한 남편을 비롯해 임시직 취업 알선소에서 일하던 아들,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절친한 친구 등 꼽다 보니 금세 열손가락이 모자랄 지경, 도리어 여전히 월급을 받고 있는 사람을 떠올리는 게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네바다주 전역에 자택대피령이 내려진 지 한 달 여, 앤더슨의 집 주방 찬장엔 깡통 수프 2캔과 칠리 한 캔, 크래커 반 상자, 라면 5팩만 남아 있다. 냉장고에 있는 것이라곤 우유 반 갤런과 계란 여섯 알, 빵 몇 조각이 전부다. 은행 잔고는 고작 22달러, 자동차 기름도 4분의 1밖에 남지 않았다. 당장 자기부담금 낼 돈조차 없어 8살 딸 아이의 처방약조차 못 받오는 신세다. 앤더슨은 지난 26일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정부가) 집에 머물라고 해서 그러고 있지만, 정부에선 집에 있는 동안 생존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며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4시간 네온 사인이 꺼지지 않던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코로나19 확산 파문에 직격탄을 맞아 신음하고 있다. 재택근무로 대체할 수 없는 레저·접객업이 경제의 3분의 1을 지탱하고 있는 까닭에 미국 내 대도시 그 어느 곳보다 라스베이거스에 피해가 집중되고 있는 탓이다. 지난달 카지노가 합법화되고 100년 만에 처음으로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에 위치한 대형 카지노들이 일제히 문을 닫으면서, 수천명의 웨이터와 바텐더, 호텔 청소노동자, 카지노 직원들이 퇴직금도 없이 일자리에서 빈손으로 내몰린 탓이다. 네바다 남부 유일 무료 급식소 ‘스리 스퀘어’의 최고운영책임자인 래리 스콧은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공포 영화 속 장면, 바로 라스베이거스의 지금 모습이 그렇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이후, 네바다주에서 실업수당을 신청한 이들은 무려 3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5주 연속 실업수당 신청자가 신기록을 경신하며, 네바다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라스베이거스 시장조사 업체 ‘어플라이드 어낼리시스’는 라스베이거스의 실업률이 25%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대공황 때보다 2배나 높은 수치로, 이 수치는 계속 올라가는 추세다. 어플라이드 어낼리시스의 제러미 아궤로 대표는 “분석적 관점에서 볼 때 유례 없는 일”이라며 “현상황에 대한 준거틀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네바다주는 주당 최대 469달러씩 26주간 실업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실업수당 청구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를 관리하는 누리집이 마비되는가 하면, 업무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로사 멘데스 네바다 고용훈련재활국 대변인은 “지난 달 하루에 2만8천건의 (실업수당 관련 문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며 “주 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엔 ‘전화 대기 시간만 9시간이었다’는 등의 불만이 터져나오는가 하면, “당국이 코로나19 확진자에게만 신경을 집중하고 일자리를 잃어 약 살 돈도 없는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비판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실업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라스베이거스시와 네바다 주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깊어지는 경제 주름살을 고려해 당장 자택대피령을 완화했으면 좋겠지만, 그랬다간 코로나19 확산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캐럴린 굿맨 라스베이거스 시장은 이와 관련 지난주 각종 방송 인터뷰에서 카지노를 비롯한 비필수 시설들의 영업 재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상황이다. 라스베이거스 호텔·카지노들 역시 손님들에 대한 발열 검사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다음달 15일부터 영업을 재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스티브 시솔락 네바다 주지사는 “아직 (영업을) 재개할 때가 되지 않았다”며 자택대피령 완화 시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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