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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국 제약회사 바이오젠은 어쩌다 ‘슈퍼 전파자’가 됐나

등록 2020-04-13 16:33수정 2020-04-14 02:47

유럽 등 임원 참석 2월에 연례 지도자 회의 강행
만찬서 악수·볼키스…주말엔 지인 파티 등에 참석
사내 감염 알고도 대규모 외부 회의에 임원 파견
“의약계 두뇌들이 코로나19 신경 안 쓴 것” 비판
미국 뉴욕주 뉴로셸에서 지난 11일(현지시각) 코로나19 확진자를 치료 중인 한 보건 의료 종사자가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닫힌 창문을 사이에 두고 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로셸/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뉴욕주 뉴로셸에서 지난 11일(현지시각) 코로나19 확진자를 치료 중인 한 보건 의료 종사자가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닫힌 창문을 사이에 두고 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로셸/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월26~27일,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에 위치한 매리엇 롱와프 호텔에선 제약업체 바이오젠의 ‘연례 리더십 회의’가 열렸다. 거듭된 임상실험 실패 끝에 이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알츠하이머 치료약 ‘아두카맙’이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앞두고 있는 상황, 회의장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회의 첫 날 저녁, 미국은 물론 독일과 스위스, 이탈리아 지사 등에서 날아온 175명의 임원이 함께 부페 식사를 나누며 서로 안부를 묻고 윗선에 눈도장 찍기에 바빴다. 서로 악수를 나누거나 볼 키스를 나누는 일상적인 모습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틀의 일정이 끝나고 임원들은 각자 차와 비행기 등을 타고 미국과 유럽의 일터로 흩어졌다. 그 주말, 회사 안에선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이는 직원들이 있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매사추세츠 보건국에 따르면, 바이오젠 직원을 비롯해 이들과 접촉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이들은 99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어디까지나 매사추세츠 거주자들에 한정된 수치다. 인디애나주의 첫 확진자 2명과 테네시주 첫 확진자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초기 확진자 6명 모두 바이오젠 임원 출신으로 확인된 것으로 볼 때, 바이오젠과 관련된 확진자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12일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문제의 회의’에 참석했던 임원들이 최소 미국 6개 주와 해외 3개국으로 이동한 탓에 이후 얼마나, 어떻게 확산이 이뤄졌는지 당국이 정확히 추적하기도 어려운 상태라고 신문은 전했다.

한마디로, 감염병과 싸워야 할 제약업체 바이오젠이 ‘슈퍼 스프레더(슈퍼 전파자)’가 된 상황이다. <뉴욕 타임스>는 이날 바이오젠의 사례가 미국의 코로나19 확산 초기 대규모 감염 사태를 보여주는 전형이라며 구체적인 과정을 짚어 보여줬다.

바이오젠이 슈퍼 스프레더가 된 까닭은 무엇보다도, 2월 연례 지도자 회의를 일정대로 강행한 데 있다. 회사 쪽에선, 회의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세계보건기구(WHO) 차원의 팬데믹(전세계적인 대유행) 선언이 이뤄지지 않았고, 미국 내 확진자 수도 불과 30명에 그쳤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제약업체 일부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국제 회의 일정을 취소한 것과는 달리, 회의를 강행한 건 알츠하이머 치료약 허가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개최 압박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바이오젠의 한 전직 임원은 “불행히도 (당시 연례 지도자 회의장은) 바이러스 배양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고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이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별도의 조처 없이 일상 활동에 복귀했고, 결과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알츠하이머 사업부 부사장 중 하나가 회의 이틀 뒤인 2월29일 남편과 함께 뉴저지주 프린스턴의 친구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가, 참석자 45명 중 15명에게 코로나19를 옮긴 게 대표적이다. 심지어 알츠하이머 치료약 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직원은 회의에 참석했던 상사를 통해 감염됐는데, 이후 감염 사실을 숨긴 채 가족과 함께 중국 베이징에 입국하려다가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연례 지도자 회의를 통해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 회사의 조심성 없는 행보도 도마에 오른다. 바이오젠은 3월2일, 연례 리더십 회의 참석자 중 일부가 의심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전직원에게 이메일로 고지하면서도, 투자은행 코웬이 주최하는 대규모 보건 회의에 4명의 임원을 참석시켰다. 이들은 보스턴의 한 호텔 방에서 잠재적 투자자들과 별도의 미팅을 갖기도 했는데, 이후 이 네 사람 중 2명이 코로나19 확진자 판정을 받았다.

또 연례 지도자 회의에 참석했던 독일·스위스 임원 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4일)을 받자, 5일부터는 사무직 전직원에 대한 재택근무 지시가 내려졌는데 이날 한 임원은 수도 워싱턴에 위치한 미국제약협회(PhRMA)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후 이 임원 역시 확진 판정을 받아, 협회는 방역을 위해 폐쇄되기도 했다.

바이오테크 산업 전문지 <엔드포인츠 뉴스>의 존 캐롤 편집장은 “보건·의약 업계 최고의 두뇌들이라고 할 만한 이들이 자신들의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줄 가장 큰 문제(코로나19)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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