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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펠로시 하원의장, 트럼프 ‘자화자찬’ 연설문 찢어버리다

등록 2020-02-05 16:31수정 2020-02-06 02:44

4일 트럼프 국정연설, 미국의 깊은 분열 표출
탄핵 주도한 펠로시 하원의장에 눈길도 안 줘
80분 연설 내내 ‘치적 자랑’에 리얼리티 쇼까지
펠로시 의장은 연설 끝나자마자 원고 ‘쫙쫙’
언론들 “전국민 대상 연설에서 재선 요구” 비판
4일 저녁(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아래)이 의회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마친 직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 뒷줄 오른쪽)이 의장석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문 원고를 찢어버리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4일 저녁(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아래)이 의회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마친 직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 뒷줄 오른쪽)이 의장석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문 원고를 찢어버리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저녁(현지시각) 신년 국정연설을 했다. 재임 중 세 번째이자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한 마지막 신년 국정연설은 트럼프의 일방 행보와 그에 대한 민주당의 깊은 불신과 경멸감, 어느 때보다 깊어진 미국의 분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연설이 끝난 직후에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에서 “미국의 모험은 이제 막 시작됐다. 우리의 정신은 여전히 젊고, 태양은 여전히 떠오르며, 신의 은총이 여전히 빛난다”며 “친애하는 미국인이여, 최고(의 시절)가 이제 다가온다”는 말로 약 80분간의 연설을 마무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마자 의석에선 공화당 의원들과 지지자들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바로 그 순간, 연단 뒤쪽의 의장석에 있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문 원고를 몇장씩 집어들어 보란듯이 천천히 네 차례에 걸쳐 찢어버렸다. 펠로시 의장은 나중에 기자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대안들에 견줘 그나마 예의 바른 행동”이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동영상 바로가기= Pelosi rip up Trump's State of the Union speech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연단에 오르면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원고를 전달했으나 펠로시 의장이 악수를 위해 손을 내 미는 순간 그와 눈길도 마주치지 않은 채 외면하며 돌아섰다. 이에 펠로시 의장도 청중에게 트럼프 대통령을 소개하면서 관례적으로 사용하는 “미국의 대통령을 소개하게 된 것은 크나큰 특권이자 특별한 영광”이라는 문구를 생략한 채 “의회 멤버 여러분, 미국의 대통령이다"라고만 하는 데 그쳤다

하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한 펠로시 의장과 탄핵 혐의를 전면부인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신경전을 벌이면서, 이날 연설은 시작부터 냉랭함이 감돌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집권 공화당 다수의 상원에서 무죄 판결이 예정된 탄핵심판 종료를 앞두고 있다.

4일 저녁(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아래)이 의회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면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 뒷줄 오른쪽)이 악수하기 위해 내민 손을 외면하며 상원의장을 겸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4일 저녁(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아래)이 의회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르면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 뒷줄 오른쪽)이 악수하기 위해 내민 손을 외면하며 상원의장을 겸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시엔엔>(CNN) 방송은 두 사람의 ‘불화’를 이날 국정연설의 ‘4가지 순간’ 중 첫 순위로 선정했다. 둘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이들이 건강보험체계를 파괴하려 한다”며 오바마케어를 비난하자 민주당 의석에서 일제히 “바로 당신”이라는 야유가 쏟아진 순간, 셋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 도중 미국의 극우 정치평론 방송인 러시 림보를 불러내 민간인 대상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깜짝 수여한 순간, 마지막은 중동에 4차례나 파병된 미군 병사를 데려와 부인과 두 딸의 품에 안겨준 순간이었다. 방송 진행자 출신의 트럼프가 국정연설에서도 ‘리얼리티 쇼’를 연출한 셈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국정연설의 대부분을 자신의 경제 치적과 이민정책 및 외교·안보 정책의 ‘성과’를 한껏 부풀리며 자화자찬하는 데 할애했다. 최근 몇 달째 미국 정치권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를 뒤흔든 ‘탄핵’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상당수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사실상 선거운동을 벌였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자신의 국정연설을 전국의 유권자들에게 직접 발언하는 기회로 삼으며, (의회의) 탄핵심판이 공식 종료되기도 전에 재선(에서 지지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꼬집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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