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에서 숨진 아들 세스의 침대엔 지금도 그가 고교 때 썼던 미식축구 헬멧이 놓여 있다. 어머니 수가 헬멧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어머니는 투사가 됐지만…가슴엔 슬픔이 자란다
그가 보여준 아들의 방은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침대 위엔 군화와 전투모, 미식축구 헬밋, 티셔츠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문엔 아들이 그렇게 좋아했던 뉴욕양키즈 야구모자들이 걸려 있다. 2년9개월 전 아들이 이라크로 가기 전의 그 모습 그대로다. 그는 아들의 전투모를 집어들었다. “시위에 참가할 때는 자주 이 모자를 쓴다. 아들이 함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건 종교전쟁…귀대 싫다” 던 아들의 죽음
알카에다 운운 부시의 거짓말 눈뜨게 만들어
한달에 4∼5차례 미국 안팎 시위현장 참여
“모든 병사들 귀향 때까지 걸음 안 멈출 것” 수 니드러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그는 2004년 2월 이라크에서 하나뿐인 아들 세스(당시 24)를 잃었다. 싸늘한 겨울날, 군목과 병사 2명이 그의 집에 찾아온 날을 잊을 수 없다. 군 차량을 집 앞에서 보았을 때, 그는 본능적으로 모든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아들의 죽음은 모든 걸 바꿔놓았다. 어머니는 투사가 됐지만, 슬픔은 그의 가슴 속에서 계속 자란다고 했다. “매일 저녁 샤워를 할 때마다 아들과 대화를 한다. 그리곤 울어버린다. 죽기 전날 세스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집에 없어 자동음성녹음기에 목소리만 남았다. 그 녹음테이프를 지금도 갖고 있다.” 뉴욕 인근의 작은 도시 페닝턴에 있는 그의 집 앞엔 커다란 미국국기가 힘차게 휘날린다. 아들과 미래의 손자들을 위해 부부가 직접 지은, 방 10개짜리 저택이다. 아들은 결혼한 지 닷새 만에 이라크로 갔다. 아들, 손자들과 함께 이 집에서 성대한 파티를 열려던 수의 꿈은 이젠 물거품이 됐다. 미국에서 집에 국기를 게양하는 이는 거의 공화당원이다. “아들이 군에 입대할 때 남편이 국기를 세웠다. 남편은 오랜 공화당원이었다. 아들이 죽은 뒤 나는 국기를 거꾸로 달려고 했다. 남편이 그걸 말렸다. 누가 우리를 비애국적이라 비난할 수 있는가.”
이라크 미국 전사자 추이
그는 ‘병사가족들의 외침’(Military Family Speak Out)이란 단체에 가입했다. 이라크 참전군인 가족들이 만든 반전운동 단체다. 지금은 수천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2005년 초엔 신디 시핸과 함께 ‘평화를 추구하는 금빛별 가족’이란 단체를 만들었다. 미국 반전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 신디 시핸과 그는 둘도 없는 친구라고 말했다. “내 아들이 전사한 뒤 두달쯤 지나서 시핸 역시 아들을 잃었다. 그 직후인 2004년 5월 우리는 처음 만났다. 우리는 죽 함께 활동했다. 지난 여름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의 투쟁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보내던 크로퍼드 목장 앞에서 신디 시핸이 처음 시작한 농성은 수를 비롯한 반전어머니들의 동참으로 이어졌다. 결국은 미국과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수는 아들 침대에 놓여있는, ‘부시 당신이 내 아들을 죽였다’라고 쓰인 티셔츠를 보여주며 “이걸 입고 크로퍼드에서 시위를 했다”고 말했다. 크로퍼드 목장 진입로의 길 맞은편엔 부시 지지 시위대들이 몰려 있었다. 갑자기 그 대열에서 한 남자가 수에게 다가왔다. 아주 큰 몸집이 꼭 군인 출신 같았다고 한다. 이 남자는 수를 껴앉고 “아들이 숨진 걸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속삭였다. 수는 눈물이 쏟아졌다. “내 생애 가장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부시 지지자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데) 왜 부시는 우리를 만나주지 않는 것일까. 우리들 앞으로 부시 부부가 탄 차량이 지나갔다. 그러나 차 안의 부시는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는 한달에 4~5차례는 집을 떠난다. 반전 여행이다.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연설을 하고 시위에 참여한다. 그리스와 캐나다 등 외국의 반전시위에 초청을 받아 가기도 했다. 남편도 변했다. 2004년 수 부부는 뉴욕서 열린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 시사회에 초대를 받았다. 이 영화를 보고난 뒤 남편은 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안하다. 나는 이 모든 걸 믿을 수 없다. 이제부터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든 이해할 수 있겠다.” 언제까지 아들의 방을 그대로 둘 생각일까. “세스가 나에게 ‘엄마, 이젠 나를 놓아주세요’라고 말할 때까지다. 아마 이라크전이 끝나고 모든 병사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이 그때일지 모른다. 새해엔 그런 날이 오리라 믿는다.” 페닝턴(뉴저지)/글·사진 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금빛별 가족’ 부시 목장 앞 농성 이라크전 미국여론 극적 반전
이라크전에서 숨진 아들 세스의 침대엔 지금도 그가 고교 때 썼던 미식축구 헬밋이 놓여 있다. 어머니 수가 헬밋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2005년 초, 이라크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이 ‘평화를 추구하는 금빛별 가족’(Gold Star Families for Peace)이란 단체를 만들 때만 해도 이 단체에 주목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사자 가족의 반전운동이란 미국에서도 아주 드문 일이었다. 1차대전때 자식잃은 어머니들 옷 장식물서 기원
회원들 “한국군 개입 이유없어…서둘러 철군을 ‘금빛별 가족’의 창립회원인 나디아 매카프리(캘리포니아 거주)는 <한겨레>와의 전화인터뷰에서 “2004년 중반부터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끼리 새로운 조직을 만들자는 논의를 해왔다. ‘금빛별 가족’ 회원들은 거의 모두 ‘병사가족들의 외침’에도 소속돼 있다. 우리는 강연을 하고 시위를 한다. 때로는 돈을 모아 텔레비전에 반전 광고를 한다”고 말했다. ‘금빛별’이란 1차 세계대전 때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이 검은색 드레스에 금으로 도금한 별을 단 데서 유래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이 이라크 반전운동의 흐름을 바꿨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사자의 관이 언론에 노출되는 걸 엄격하게 금지했다. 매카프리가 국방부의 이 조처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그는 2004년 6월 전사한 아들의 관이 새크라멘토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사진기자들을 불러 운구모습을 촬영하도록 허용했다. 지난해 8월 ‘금빛별 가족’의 신디 시핸이 텍사스 크로퍼드목장 앞에서 부시 면담을 요구하며 벌인 한달간의 농성은 미국내 여론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았다. 매카프리도 그때 시핸과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부시는 이들의 요구를 외면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백악관은 국민들과의 공감대를 잃고 말았다”고 <뉴욕타임스>는 평했다. <타임>을 비롯한 많은 신문·잡지들이 시핸을 ‘올해의 인물’ 중 한사람으로 뽑은 건 반전운동 어머니들에 대한 미국사회의 경배이기도 하다. 매카프리는 “부시가 우리를 외면하는 걸 보면서,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전략이 없다는 걸 국민들이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금빛별 가족’은 대부분 어머니들로 구성돼 있다. 페르난도 수아레즈 델 솔라(50)는 드문 ‘반전 아버지’ 중 한사람이다. 그의 아들 알베르토는 이라크 개전 1주일만에 숨졌다. 델 솔라와 나디아 매카프리, 수 니드러는 한국군의 이라크 주둔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아직 한국군 희생자가 없는 건 정말 다행이다. 한국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 하루빨리 철군하길 바란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페닝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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