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부에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에 대한 수사를 압박했다는 의혹으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2일 텍사스주 휴스턴의 엔아르지(NRG) 스타디움에서 열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의 대규모 집회에 함께 참석해 인도계 미국인들의 표심 공략에 나서고 있다. 휴스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에 대한 수사를 압박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야당인 민주당이 다시금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 통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결코 문제 될 게 없다”며 오히려 바이든 전 부통령 쪽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역공세를 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민주당)은 22일 하원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대통령의 심각한 헌법적 의무 위반 사안에 대해 내부고발자가 의회에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정부가 계속 막는다면,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조사 국면으로 이끌, 무법천지의 심각한 새로운 장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지원 연기를 압박 수단 삼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아들 헌터에 대한 수사를 압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 관련 내부고발 내용을 의회에 제출하라는 요구를 정부가 거부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펠로시 의장은 직접적으로 ‘탄핵’을 입에 올리진 않았다. 하지만 오는 26일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 국장 직무대행이 출석하는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 때까지 자료 제출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특단’의 조처를 취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날, 애덤 시프 미국 하원 정보위원장도 <시엔엔>(CNN)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내부고발 내용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지 않는다면 “탄핵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2016년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된 ‘러시아 게이트’ 사건과 이후 특검 수사에 대한 방해 의혹이 일었을 때는 물론, 대통령의 노골적 인종차별적 발언이 도마에 올랐을 때도 줄곧 ‘탄핵 신중론’을 유지해왔던 민주당 중진들도 이번 내부고발을 계기로 다시금 탄핵을 고민하고 있다. 심지어 공화당에서, 밋 롬니 상원의원이 “대통령이 정치적 라이벌을 조사하도록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요청 혹은 압박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답변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문제로 정국이 들썩이고 있지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미국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함께 민주당의 전진기지로 떠오른 텍사스 휴스턴을 찾아 ‘공동 유세’와 다를 바 없는 행보에 나섰다. 이번 사태를 자신에 대한 또 하나의 ‘트집 잡기’로 몰아가며, 정면 돌파할 기세다.
그는 이날 휴스턴으로 가기 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7월25일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과 관련해 “주로 축하한다는 얘기와 함께 그동안 일어난 모든 부패에 관한 대화를 비롯해, 바이든 전 부통령이나 그의 아들을 비롯한 우리 국민들이 우크라이나에 부패를 일으키길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결단코 잘못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과정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 등은 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 사실을 인정한 것은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역공세 차원인 것으로 비친다. 구체적인 통화 내용은 공개하지 않으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과 ‘부패’ 문제를 나란히 언급해 자연스레 의혹 가능성을 부추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바이든 전 부통령이 ‘아들과 해외 사업 거래에 관해 얘기한 적이 없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거짓말” “큰 실수” “부정직하고 어리석은 이야기”라고 몰아붙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공개할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녹취록 공개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면서도 “외국 정상들과 통화를 할 때 그들이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해선 안 된다고 느끼도록 하고 싶지 않다”며 방어막을 쳤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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