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수용소·불법 도청 보도 미뤄 달라”
위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의 특종 보도 막으려다 실패
“미 중앙정보국(CIA)이 유럽에 테러용의자 비밀수용소를 운영하고 있다.”(<워싱턴포스트> 11월2일 보도)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01년 9·11 직후 국가안보국(NSA)의 영장 없는 비밀도청을 승인했다.”(<뉴욕타임스> 12월16일 보도)
최근 대테러전쟁의 그림자를 들춰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특종기사들이다. 이들 보도가 나가기 전, 부시 대통령은 직접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을 만나 보도 보류를 요청했지만 실패했다고 26일 <워싱턴포스트>가 밝혔다.
“신문을 읽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로 유력신문들에 불만을 가진 부시 대통령이 두 신문의 편집국장을 백악관으로 불러 만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부시 대통령이 이들 보도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평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레너드 다우니 편집국장이 부시와 면담한 것은 11월2일 보도 이전이고, <뉴욕타임스>의 빌 켈러 국장과 부시의 면담은 지난 5일 이뤄졌다고 한다. 다우니 국장은 “우리 신문 기사에 담긴 국가안보 문제들을 토론하기 위해, 비공개를 전제로 최소한 한차례 이상 면담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면담엔 이 신문사 회장인 아서 슐츠버거 2세도 자리를 함께 했다고 한다.
두 신문 모두 부시의 부탁에도 기사를 내보냈고, 기사를 빼려는 백악관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뉴욕타임스>가 ‘영장 없는 비밀도청’ 기사를 내보내자, 부시는 이 보도를 비난하면서 정보누설자를 색출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진보 진영은 두 신문이 부분적으로 보도협조를 받아들인 점에 대해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유럽 비밀수용소 기사를 내보내면서 정부 요청을 받아들여 수용소의 구체적 위치는 보도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비밀도청 기사를 지난해에 취재해놓고도 1년 넘게 보도를 보류해왔다. 진보 성향 잡지인 <네이션>은 “지난해 대선 전에 <뉴욕타임스> 기사가 나갔다면 어떻게 됐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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