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이슬람 혐오와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항의 시위에 참여한 여성이 성조기 무늬를 넣은 히잡을 쓰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페이스북이 백인 민족주의와 분리주의 콘텐츠를 금지하기로 했다. 뉴질랜드에서 무슬림 50명이 희생된 테러 이후 백인 민족주의의 위험을 인정하고 뒤늦게 대응에 나선 것이다.
페이스북은 27일 ‘혐오에 맞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백인 민족주의와 분리주의를 찬양하거나 지원 또는 대표하는 것을 금지한다. 조직적인 혐오 단체에 연관된 이런 개념은 우리 서비스에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처에 따라 다음주부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백인 민족주의·분리주의 게시물은 삭제·차단된다. 검색창에 ‘하일 히틀러’ 같은 문구를 입력하면 ‘혐오 이후의 삶’이라는 단체의 사이트로 연결된다. 이 단체는 과격한 혐오 단체 출신 인사들이 개과천선해서 만든 곳이다.
페이스북이 27일 백인 민족주의 관련글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페이스북이 자사 소식을 전하는 블로그 '뉴스룸'에 제시한 예시를 보면, '하일 히틀러'를 입력하자 반 혐오단체 링크가 제시되고 있다. 페이스북 뉴스룸 갈무리
페이스북은 지난 3개월간 미국·유럽·아프리카의 인종 문제 단체 및 전문가들과 20여 차례 소통해 이같은 정책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달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테러가 결정적 영향을 줬다. 페이스북과의 소통에 참여한 미국 변호사 단체 관계자는 “뉴질랜드 사건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페이스북 플랫폼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남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동안 페이스북은 인종차별 관련 게시물은 금지했지만 백인 민족주의에는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은 “‘미국의 자존심’, 바스크 분리주의처럼 보다 넓은 개념의 민족주의와 분리주의는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뉴질랜드 테러범이 페이스북으로 17분에 이르는 공격 상황을 생중계하면서, 이에 손쓰지 못한 페이스북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뒤늦게 관련 게시물 150만건을 삭제했지만 이미 동영상은 4천 차례 이상 재생되는 등 확산된 상태였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에스엔에스(SNS)는 출판인이지 단순한 집배원이 아니다”라며 책임 있는 대응을 요구했다. 프랑스의 무슬림 단체는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페이스북의 조처는 샬러츠빌 사건 이후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미국 사회의 자성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017년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 시위 도중 참가자가 차량을 몰고 반대 시위대 쪽으로 돌진해 1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이후 백인 민족주의에 대한 경고음이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양비론적 태도로 입길에 올랐지만, 같은 공화당 출신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어떤 형태의 인종적 편견이나 백인 우월주의도 미국의 신조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오스트리아 검찰이 뉴질랜드 테러와 관련해 백인 민족주의 단체인 ‘오스트리아 정체성 운동’ 대표 마르틴 젤너를 조사하며, 이 단체의 해산을 검토한다고 <가디언>이 26일 보도했다. 이 단체에는 지난해 뉴질랜드 총격범 이름으로 기부금 1500유로(약 192만원)가 들어왔다. 또 테러범이 에스엔에스에 올린 ‘선언문’에 ‘거대한 대체’(유럽에서 무슬림 인구가 늘어 백인들을 소수로 만들 것이라는 주장) 등 젤너가 쓰는 용어와 개념을 사용한 것은 그한테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젤너는 경찰이 전날 자신의 아파트를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테러범과 이 단체 회원들이 연결됐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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