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9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양국 재계 지도자들 행사에 참석한 뒤 함께 자리를 뜨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치킨 게임’ 양상으로 흐르는 가운데, 미국 행정부 인사들이 중국에 계속 날을 세우며 전의를 굽히지 않고 있다. 중국 내 해외 기업들이 무역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동남아시아로 이전을 검토하거나 이미 이전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대중 협상파’에 가까운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2000억달러(약 224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3차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한 다음날인 18일 <시엔비시>(CNBC)에 출연해 “중국은 미국에 보복할 실탄이 없다”며 심리전을 폈다. 로스 장관은 중국이 600억달러어치의 미국 제품에 맞불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중국은 미국의 2000억달러 규모에 맞출 만큼 미국으로부터 수입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방침에 맞서 중국은 하루 만인 18일 밤 6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 5207개 품목에 5~10%의 보복관세를 24일부터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의 미국산 제품 관세 규모는 이미 부과한 500억달러어치를 합하면 모두 1100억달러어치로,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액(1304억달러)에 거의 근접하게 된다. 로스 장관의 말대로 ‘실탄’을 거의 소진하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안에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함께 ‘비둘기파’로 알려진 로스 장관의 ‘중국 골리기 발언’은 협상론자들이 대중 강경론에 합류할 수밖에 없을 만큼 입지가 크게 좁아졌음을 의미한다. 무역 전쟁을 주도하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도 이날 공영방송 <엔피아르>(NPR)에 출연해 “중국은 사기를 치고 있다. 높은 관세장벽과 비관세장벽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시장에 들어오기 위해 어마어마한 불법 보조금을 사용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가을 대공세’가 거세지며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도 공장이전 등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19일 주중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가 최근 20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7%가 미-중 무역 전쟁으로 생산기지를 베트남·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으로 이미 옮겼거나 옮길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고 답했다. 일부 일본 업체들도 중국 현지 생산을 접고 일본으로 유턴하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전했다. 이는 기업들이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뜻이다.
이용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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