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7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의 이틀째 면담을 위해 백화원 초대소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평양/AP 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6~7일 이틀 동안 북한을 방문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후속 협의를 벌인 결과, 주요 쟁점별 실무 협의 틀을 구축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비핵화 및 상응조처를 둘러싼 방법론에서 북-미 양쪽의 시각차가 드러나면서 향후 팽팽한 장기전을 예고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방북 이틀째인 7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영철 부위원장과 회담을 마친 뒤 출국하기 전 수행 기자들에게 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거의 모든 주요 쟁점에서 진전을 이뤘다”며 “어떤 부분은 상당한 진전을 이뤘고 다른 부분은 여전히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모두 발언을 보면, 진전을 이룬 부분은 한국전쟁 때 전사한 미군 유해 송환과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인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폼페이오 장관은 유해 송환과 관련해 “하루나 이틀 날짜가 바뀔 수 있지만, 오는 12일 판문점에서 (북-미의) 유해 송환 담담자들 간 회담을 열기로 했다”며 “회담은 몇일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유해 송환 관련 부분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아주 생산적인 회담”이었다고 소개했다. 몇몇 전문가들의 관측과 달리, 일부 유해 송환은 이날 이뤄지지 않았지만 구체적인 후속 협의 날짜와 장소를 잡았다는 점에서 폼페이오 장관 입장에선 ‘상당한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사일 엔진 실험시설 폐쇄와 관련해선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다”며 수위를 다소 낮췄다. 그는 “실무 수준에서 추가 협상을 위한 경로를 만들었다”며 “(북-미) 양팀이 모여 논의를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와 관련해 후속 실무회담을 열기로 북-미가 합의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후속 협상의 시기나 폐쇄 방식 등와 관련해 오간 얘기는 공개하지 않았다.
비핵화-상응조처와 관련해선 양쪽이 큰 접점을 찾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 시간표’ 및 ‘대량살상무기 신고’에서 의견 접근을 이뤘느냐’는 질문에 “대화 내용을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그 두 가지에 관해 얘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논의 각각의 요소에서 진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모두 발언에서 비핵화 성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담화를 통해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요구만을 들고 나왔다. 정세악화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기본문제인 조선반도평화체제 구축문제에 대하여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 점에 비춰보면, 선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주장하는 북한의 주장이 팽팽히 맞섰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을 수행 중인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이 7일 아침 “북-미가 비핵화 검증 등 핵심 사안을 논의할 실무그룹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힌 점에 비춰보면, 후속 협의를 위한 실무채널 구축 형식으로 동력을 유지하는 데는 합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북한 외무성은 이날 회담을 마친 뒤 몇시간만에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리는 미국 쪽이 조미(북미) 수뇌 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맞게 신뢰 조성에 도움이 되는 건설적인 방안을 가지고 오리라고 기대하면서 그에 상응한 그 무엇인가를 해줄 생각도 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6일과 7일에 진행된 첫 조-미(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나타난 미국 쪽의 태도와 입장은 실로 유감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조미(북-미) 사이의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고 신뢰를 조성하며 이를 위해 실패만을 기록한 과거의 방식에서 대담하게 벗어나 기성에 구애되지 않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것, 신뢰 조성을 앞세우면서 단계적으로 동시 행동 원칙에서 풀 수 있는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