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틀 연속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진행하는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와 날짜가 결정됐다고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침묵 아닌 침묵’이 길어지자, 그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각)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감세 관련 행사에서 “(북-미 정상회담) 시간과 장소에 대한 결정을 모두 마쳤다. 우리는 날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인 4일에도 장소와 날짜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리는 전미총기협회 행사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정상회담 날짜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주 조만간 있을 것이다. 날짜와 장소를 갖고 있다. 양쪽(북-미)이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발표 시기를 묻는 질문엔 “곧, 아주 조만간”이라고만 밝혔다. 그는 “앞으로 아주 가까운 시기에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거기서 여러분을 보게 될 것이다. 아주 흥미진진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에도 “며칠 내 (시간·장소를) 결정할 것”이라며 분위기를 띄웠지만 공개를 계속 미루고 있다.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의 말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북-미 간에 이뤄지는 사상 첫 정상회담의 장소와 시간이 합의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이 회담의 장소와 시간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22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점과 관련해선 ‘6월 초’가 유력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4·27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달 28일엔 “3~4주 안에 열릴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보다는 다소 늦어지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백악관 참모들은 준비 부족을 이유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이 열리는 6월8~9일 이후 개최를 주장했지만, 현재로선 그 이전에 열릴 가능성이 높다.
장소와 관련해선 관측이 엇갈린다. 청와대 등에선 판문점을 유력한 후보지로 꼽지만, 제3국인 싱가포르에서 열릴 가능성도 열어두는 기류가 감지된다. 한국 정부는 북·미 정상이 남북 정상이 만났던 판문점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남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주요 내용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에 합의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한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또 하고 싶겠냐. 트럼프 대통령은 평양이 제일 극적인 장소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평양 개최’에 무게를 실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싱가포르 등) 제3의 장소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노린다면 평양이다. 평양(이 회담 장소가 될)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회담의 장소·시간 발표를 미루는 이유에 대해 흥행몰이를 위한 ‘애태우기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거 아니겠냐”고 말했고, 익명을 요구한 북-미 관계에 밝은 한 전문가도 “트럼프가 하나씩 정보를 흘리면서 정상회담으로 가는 국면에서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 이끌어가는 것으로 본다”고 풀이했다.
발표 시기가 늦어지는 배경에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의 석방 문제와 연관돼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인 3명의 석방과 동시 혹은 그 직후에 장소·시간을 발표하려 했다가 석방 문제에 변수가 생기며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 정부 안팎에선 4일 북한이 판문점에서 3명의 미국인 억류자들을 송환할 것이란 움직임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는 별다른 동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자는 판문점을 통한 송환 가능성에 대해 이날 “현재로선 특별히 확인해드릴 게 없다”고만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2일 저녁 트위터를 통해 “계속 주목”이라며 미국인 석방이 임박했음을 시사했지만, 아직까지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지은 김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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