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이 27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영접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 장소가 2곳으로 압축됐고, 날짜도 5월 안에 열릴 것이라 시사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 직후 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매우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회담) 장소에 관해 두 개 나라까지 줄였다”고 밝혔다. 하루 전날만 해도 후보지가 5곳이라고 한 것에 비하면 한층 진전된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청와대도 29일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내용을 브리핑하며 “장소와 관련해 2~3곳으로 후보지를 압축하며 각 장소의 장단점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 장소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나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 말을 종합하면, 지금까지 알려졌던 싱가포르나 몽골, 스위스가 아닌 한국 등 ‘제3의 장소’가 검토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북한이나 미국은 아니라면서 ‘한국도 포함되느냐’는 질문엔 “말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먼저 제안한 장소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한국의 한두 곳을 후보지로 제안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반응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뉴욕 타임스>, <시엔엔>(CNN)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미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싱가포르나 몽골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스위스 제네바도 여전히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주목도, 교통, 후보지와 사전 접촉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평양 개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파격을 통해 주목받기를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평양을 낙점할 가능성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평양을 방문하면, 미국이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정당화했다는 내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잇따라 표시하는 것을 두고 평양 개최 수용을 위한 사전 분위기 조성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북-미 정상회담 시기도 예상보다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미시간주 워싱턴에서 한 중간선거 지원 유세에서 “3~4주 안에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밝혀온 ‘5월말 혹은 6월초’보다 다소 당겨진 느낌이다. 시기를 앞당긴다는 것은 장소·경호·의전 등 실무적 문제뿐 아니라 비핵화 등 핵심 의제와 관련해 북-미 간에 상당한 의견 접근이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한반도와 세계인들이 더 밝은 미래를 여는 한반도 전체의 평화와 번영, 화합의 미래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목표였다. 한반도 상황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도가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공식 명칭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다.
한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9일 미 <에이비시>(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위한) 메커니즘이 무엇일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우리는 미국이 김정은과 그의 핵 무기에 위험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한 외교적 해법을 따라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싸고 북-미 사이에 이미 상당히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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