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로봇콘퍼런스에서 참가자들이 중국산 로봇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4일 발표한 1300개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는 주로 중국의 첨단기술 제품을 겨냥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보복과 맞보복을 거듭하며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세계 경제 전반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는 사태로 발전할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4일 오후 미국산 대두·자동차·항공기·화학제품 등 연간 500억달러(약 53조원)어치 106개 품목에 25%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이날 오전(미국시각 3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중국산 품목 1300개를 발표한 데 대한 즉각적인 보복조처다. 미국이 연간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기로 한 데 맞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정면대응을 한 것이다. 중국 당국은 “실시 날짜는 미국 정부의 중국산에 대한 관세 부과 상황을 보고 따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양대 강국(G2)은 서로의 급소를 직접 겨냥했다. 미 무역대표부는 관세 부과 대상 품목을 발표하면서 중국의 10대 핵심산업 육성 프로젝트인 ‘중국 제조 2025’를 비롯해 중국의 불공정 산업정책으로 혜택을 받은 것들이라고 적시했다. 텔레비전 등 일부 소비재도 포함됐지만, 주요 대상은 반도체, 로봇, 통신장비, 항공우주, 고성능 의료기기 등 중국의 핵심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대통령 각서’를 통해 중국의 강제적 기술이전 요구와 투자 제한 관행을 지적하며 목록을 제출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국의 무역 관행에 대한 수십년 만의 가장 공격적인 미국의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첨단산업에 대한 관세 목록은 단순히 지난해 3750억달러(약 397조원)까지 증가한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측면을 넘어서 있다. ‘기술 굴기’를 통해 세계 패권까지 넘보려는 중국의 장기 전략을 선제적으로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담겼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무역 소식통은 “미국도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중국의 기술 발전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 경제를 압도하게 되면 세력 재편기에 나타나는 무력충돌을 피하면서 자연스럽게 유일 강국으로 올라설 수도 있다. 중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도 미국 첨단기업의 인수·합병 장벽을 낮춰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미국의 대표적 정치위험 연구 기업인 유라시아그룹도 올해 초 ‘2018년 최상위 위험들’ 보고서에서 인공지능(AI) 같은 최첨단 기술의 승자가 “경제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향후 수십년을 지배할 수 있다”며 “기술 냉전” 시대가 도래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제조 2025’로 대표되는 중국 정부 차원의 첨단기술 발전 전략이 미국을 넘어서려는 장기적인 패권 전략이라고 보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중국도 곧바로 정면승부에 나섰다. 중국이 미국산 대두와 자동차, 항공기, 화공품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 지지했던 중서부 ‘팜 벨트’(농업지대)와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주력 생산품을 겨눴다. 올해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을 짚은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아픈 ‘대두’ 카드를 꺼내들었다. 주광야오 재정부 부부장(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중국 수출은 미국 대두 전체 수출량의 62%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산 대두 3285만톤, 140억달러(약 14조8680억원)어치를 수입했다.
중국의 신속한 대응도 이례적이다. 중국 상무부는 4일 오전 미국 무역대표부 발표 한시간여 만에 “동등한 강도와 규모의 대등한 조처를 준비하고 있다. 가까운 시간 안에 발표하겠다”고 경고했고, 당일 오후에 곧바로 대규모 보복관세 방침을 발표했다. 주광야오 부부장은 “신중국 건국 이래 중국은 외압에 굴복한 적이 없다”는 말까지 하면서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시작된 ‘무역 전쟁’은 보복의 악순환을 반복하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초 세탁기와 태양광패널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처)를 발동한 데 이어 중국산 철강·알루미늄에 ‘관세 폭탄’을 떨어뜨렸고, 중국은 이에 지난 2일 미국산 농축산품 128개 품목(연간 30억달러어치)에 보복관세로 맞대응했다. 이어 이틀 만에 미국이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관세 목록을 발표한 당일, 동일한 액수의 미국 상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발표했다.
채드 바운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이번 관세가 거시경제에 대규모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더 큰 걱정은 어디서 멈출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달 말께 복제·위조 상품을 조사해 내놓을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보고서도 휘발성 높은 사안이다.
다만 미국이 5월말까지 여론 수렴을 거치겠다고 했고, 중국도 4일 발표한 대규모 보복관세의 시행 날짜는 못박지 않아 타협 여지는 남아 있다. 왕서우원 상무부 부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문은 활짝 열려 있다. 미국이 담판을 하길 원한다면 상호존중의 기초 위에서 협상을 진행해 이견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 부부장이 “우리는 서로 칼을 빼들었다”고 할 정도로 양국이 가장 강력한 카드를 꺼내놓은 만큼, 실제 관세 부과 시점까지 치열한 물밑 협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관계에 밝은 소식통은 “앞으로 조정의 여지는 있지만, 여기서도 협상이 실패하면 관세 조처는 현실화된다”고 말했다.
워싱턴 베이징/이용인 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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