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이 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서훈 국정원장(왼쪽), 조윤제 주미대사(오른쪽)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방북 특별사절단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제안 이외에도 또다른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정부 고위관계자가 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특파원들과의 간담회 도중 밝히면서, 그 내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는 메시지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미국에 전달해 달라고 한 메시지가 있었다”면서도 “정상 간에 주고받은 것을 다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내용을 묻는 질문에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신뢰구축의 일환”이라고 설명하고, ‘비핵화와 관련한 사안이냐’는 질문에는 “매우 포괄적인 내용”이라고만 답했다. 그는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가 진정성있다고 본 것과 관련이 있느냐’는 후속 질문엔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이 전날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구두로 전달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소개했다.
정 실장이 지난 8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밝힌 북한의 대미 메시지는 △북-미 정상회담 제안 △비핵화 용의 △핵·미사일 실험 자제 △정례적인 한-미 연합군사훈련 이해 등 크게 4가지라고 할 수 있다. 내용들이 모두 굵직해, ‘별도 메시지’에도 파격적인 제안이 담겨있는 것 아니냐는 추론이 나오는 까닭이다.
정부 고위관계자가 이날 특파원 간담회에서 밝힌 △신뢰구축의 일환 △포괄적인 내용 △비핵화 진정성과는 무관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 반응 등 4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메시지는 ‘북한의 특사나 고위급 인물의 방미’ 정도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정부 소식통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논리적으로만 보면 고위급 방문 정도로 보인다”며 “어차피 정상회담 의제 등도 조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특사나 고위급 인물의 방미를 제안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이를 수용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을 방문하는 특사나 고위급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 정상회담 제안 못지 않은 폭발력을 가져올 수 있다. 앞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8일 익명의 한국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미국에 특사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김 위원장이 전한 별도 메시지가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3명의 석방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미국인 3명 석방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나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부국(CIA) 국장이 이를 위해 평양을 방문할 것이고, 이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북한의 대미 특사가 워싱턴을 방문하는 형식을 띨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 고위관계자가 별도 메시지가 ‘포괄적인 내용’이라고 밝힌 것에 비춰보면, 미국인 석방은 너무 구체적인 현안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정상국가’로 가겠다는 의향을 내보인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북한에 대한 불신이 깊던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특사단이 전한 북한의 비핵화 의향만을 듣고 즉석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수용한 데는 또다른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론에서 나온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주한 미군 주둔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주한 미군 주둔을 용인하겠다는 제안이라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은 1992년 김용순 노동당 국제비서를 미국에 보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테니 수교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로 볼 때 조선 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보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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