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73년, 정전 65년이 되는 2018년 5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난다. 냉전이 끝난 지 30여년이 지나도록 적대 국가로 등 돌리며 서로 위협하고 으르렁거렸던 두 국가 지도자의 세기적 만남은, 4월 말 남북 정상회담의 바통을 이어받으며 한반도 운명을 가르는 역사적 대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8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하고 나온 뒤 백악관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뜻을 표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항구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 위원장과 5월까지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정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고,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며, 한·미 양국의 정례적인 연합군사훈련도 지속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정 실장한테서 지난 5~6일 방북해 김 위원장과 만나 합의한 내용에 대한 설명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해 듣고, 그 자리에서 “그렇게 하자”며 정상회담에 동의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탐색전을 건너뛴” 적극적 대화 의지라고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의 발표 뒤 직접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은 (핵) 동결만이 아닌 비핵화를 얘기했다”고 평가하면서 “중대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만남이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초청을 수락했다”며 “회담 날짜와 장소는 추후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화 브리핑을 통해 “전세계가 기대하는 (회담) 결과가 나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1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된 브리핑을 할 예정이라고 <시엔엔>(CNN)이 보도했다.
남북이 4월 말에 정상회담을 하는 데 이어 북-미가 사상 처음으로 5월 중에 정상회담을 열게 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미 선순환 구조’에 본격 진입하게 됐다. 2월 북한의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 대표단 파견에 이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 파견이 북-미 정상회담 여건을 조성했다면, 4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나오는 결과물은 다시 북-미 정상회담의 마중물로 쓰일 수 있는 톱니바퀴 구조가 마련된 셈이다. 지난해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실험과 이에 맞대응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으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점을 떠올리면 극적 반전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 및 국제사회와의 협력과 공조를 유지하면서 대화 국면을 진전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정 실장은 이날 발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과 ‘최대의 압박’ 정책이 국제사회의 연대와 함께 우리로 하여금 현시점에 이를 수 있도록 했다”고 평가하고, “한·미와 우방국들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북한이 그들의 언사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줄 때까지 압박이 지속할 것임을 강조하는 데 있어 단합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가장 가시적인 합의물로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종전 선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한반도는 국제법적으로 여전히 전쟁이 중지된 ‘정전 상태’다.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10·4 정상선언’을 통해 3자 또는 4자(한국·북한·미국·중국) 정상들이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지만, 한국의 정권 교체 등으로 후속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한국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가정하면 남-북-미 정상이 종전선언을 하는 상징적인 행사를 상상해볼 수 있다.
비핵화도 당연히 테이블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5월 정상회담에선 북한의 미래 핵을 동결하고, 이에 대해 미국은 불가침조약 등을 통해 소극적 안전 보장을 약속할 수 있어 보인다. 이어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북한의 기존 핵 폐기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양쪽이 타협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70여년간 발목을 잡아온 대립 구조가 한 번의 북-미 정상회담으로 모두 풀리겠느냐”고 내다봤다. 5월 정상회담은 평화체제 구축으로 가는 첫걸음 정도의 의미라는 뜻이다. 다만 ‘통 큰 결단’과 ‘화끈한 거래’를 선호하는 두 지도자의 성향에 비출 때 파격적 합의가 나올 수도 있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진행을 위해선 신뢰 구축 조처가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상회담 전에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석방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평양을 방문할 것이고, 정상회담의 장소와 시기 문제도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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