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일 백악관에서 철강, 알루미늄 업계 경영진과 만나 수입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선별 과세’ 대신 ‘일괄 과세’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모든 나라를 ‘무역의 적’으로 돌린 꼴이어서 그만큼 미국 안팎의 후폭풍도 거세지고 있다.
‘철강 25% 일괄 관세’, ‘알루미늄 10% 일괄 관세’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1일(현지시각) 발표는 가장 가혹한 무역 보복 선택지로 꼽힌다. 상무부가 올린 세가지 안 가운데서도 가장 파괴력이 큰 ‘철강 24% 일괄 관세’, ‘알루미늄 7.7% 일괄 관세’보다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다수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외과수술’식 규제 대신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선포한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몇가지 추론은 가능하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한국을 포함한 수입 세탁기·태양광패널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처)와 관련해서도 상무부 권고안보다 더 강경한 조처를 발동했다. ‘충격요법’식 돌파를 즐겨 하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이 작동했을 수 있다.
둘째, 각국의 맹렬한 로비에 직면해 특정 국가를 포함시키거나 배제하기가 어려운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힌 점도 고려됐을 수 있다.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1일 철강기업 최고경영자들과의 회동에서 특정 국가를 무역제재에서 면제해주면 다른 국가들도 똑같은 대우를 요청할 수 있다며 일괄 관세 방침을 밝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적으로는 4월 중순께 규제안을 발표해도 되지만, 발표 시기를 크게 앞당겼다. 오는 13일 철강산업의 중심지인 펜실베이니아주 연방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서둘렀다는 관측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아성이었던 이곳을 2016년 대선 때 탈환했고, 2020년 재선을 염두에 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확실히 정치적 기반을 다져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논의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두고두고 정책 결정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정부 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조처에 찬성한 고위 관계자는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피터 나바로 무역제조업정책국장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또한 이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파들을 의식해 관계부처 간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번 조처를 밀어붙였다며, “지난 24시간 일어난 것(혼선)은 백악관 프로세스의 완전한 와해”라고 꼬집었다.
자유무역을 지지해온 공화당 지도부도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실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규제안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들을 검토한 뒤 다른 접근법을 살펴보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무역문제를 관장하는 공화당 소속의 오린 해치 상원 재무위원장, 케빈 브레이디 하원 세출위원장도 일제히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2년 3월 수입 철강에 대해 3년 기간의 세이프가드 조처를 발동했지만, 외국의 보복관세와 내부 반발 등으로 예정보다 훨씬 빠른 2003년 12월 돌연 철회한 사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시의 길을 따를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이날 “상당 기간 (규제안이) 지속될 것”이라고 밝힌데다 저돌적인 성품에 비춰보면, 최소한 대통령 재선이 있는 2020년 11월까지는 끌고가려 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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