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미국 뉴욕 트럼프 타워 앞에서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정보당국이 정교한 해킹을 위해 만든 ‘해킹툴’을 도난당했다.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은 1년 가까이 독일에서 러시아 정보당국과 연계됐다고 파악한 한 러시아인을 접선해 비밀리에 회수 작전을 벌였다. 10만달러(약 1억900만원)도 건넸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한 수상한 자료들만 건네받았을 뿐 해킹툴 회수에 실패했다.
<뉴욕 타임스>가 10일 전한 미국 정보당국의 작전 실패 전말이다. 중앙정보국과 국가안보국이 도난당한 해킹툴은 중국이나 러시아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해킹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이 사이버무기는 ‘섀도 브로커스’(Shadow Brokers)라고 자칭하는 정체불명 집단의 손에 넘어갔다. 미 정보당국은 이 해킹툴이 미국 정부에 대한 해킹에 이용될 것을 우려해 필사적으로 회수에 나섰다.
국가안보국과 중앙정보국 등이 내세운 미국 기업인과 러시아 정보당국과 관련돼 있다는 한 러시아인의 접촉은 지난해 초 처음 이뤄졌다. 러시아인은 처음엔 해킹툴을 돌려주는 대가로 1천만달러를 요구하다 100만달러(10억9천만원)로 대폭 낮췄다. 이 러시아인은 베를린의 러시아대사관에서 2013년 한 남성이 2명의 여성과 모스크바 호텔 방에 같이 있는 장면이라는 15초짜리 동영상을 미국 쪽에 보여주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는 화면만 있고 소리는 없는 이 영상에 등장한 남성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그 러시아인의 주장을 검증할 수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4월 거래가 거의 성사될 듯 보이자 중앙정보국 요원들이 독일에 급파되기도 했다. 9월엔 100만달러 가운데 첫 거래대금으로 10만달러를 러시아인에게 건넸다. 하지만 이후 이 러시아인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와 러시아의 공모관계 등을 시사하는 자료들만을 넘겼고 해킹툴은 내놓지 않았다.
올해 초 미 정보당국은 이 러시아인에게 해킹툴을 주든지 아니면 러시아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말라고 경고했고, 러시아인은 “고맙다”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미 정보당국 관리들은 <뉴욕 타임스>에 러시아가 미 행정부 내에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벌이는 작전에 연루될 것을 우려해 거래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국가안보국은 이 신문의 취재에 “모든 국가안보국 직원들은 비밀정보를 보호해야 할 종신 의무가 있다”며 확인을 거부했다.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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