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워싱턴 의사당에서 새해 국정연설을 하는 것을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박수를 치며 듣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각) “어떤 정권도 북한의 잔인한 독재보다 더 전체적이고 가혹하게 자국 시민을 탄압하지 않았다”며 “북한의 무모한 핵무기 추구가 우리의 본토를 곧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집권 2년차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하원에서 한 첫 새해 국정연설에서 이렇게 밝힌 뒤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의 압박 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핵 위험에 대한 긴급성을 강조하면서도, 군사행동보다는 제재 등 ‘외교적 해법’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과거의 경험은 우리에게 안주와 양보는 단지 침략과 도발을 불러들일 뿐이라는 것을 가르쳐줬다”며 “우리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과거 행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핵 해결을 위한 의지를 강조하면서,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오기 전까지는 대북 압박 공세를 계속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한 문제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 북핵보다는 인권 문제 비난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그는 “미국과 우리의 동맹에 가할 수 있는 핵 위협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정권의 타락한 성격만 봐도 된다”며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뒤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및 탈북자인 지성호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 초대된 웜비어의 부모를 가리키며 “당신들이 우리의 세상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에 대한 강력한 증인들”이라고 했고, 지씨에게는 “그의 이야기가 자유 속에서 살고자 하는 모든 인간 영혼의 열망을 증언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다. 또한 ‘리틀 로켓맨’이라고 비아냥거리고 ‘북한 완전 파괴’를 거론한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연설은 물론, 북한의 인권 침해 사례를 광범위하게 열거한 지난해 11월 한국 국회 연설보다도 자극적 표현을 덜 사용한 편이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국에서 한 얘기와 비슷하지만 장소가 다르다”며 “자유나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에서 이 정도로 얘기한 것이면 수위가 내려갔다고 보는 게 맞다”고 밝혔다. 다만 웜비어 부모와 지성호씨를 직접 연설에 참석시켜 소개하는 감성적 전달 방식을 택함으로써 미국민들에 대한 호소력은 유엔이나 국회 연설 때보다 컸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국회 연설 때처럼 “우리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우리를 시험하지 말라”는 식의 위협적인 대북 언사도 없었다.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일정하게 상황을 관리하려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북-미 협상의 여지를 열어놓지는 않았으며, 선과 악의 이분법 구도에 따라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전쟁 위기를 고조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적인 순간에 실용적 판단을 할 것으로 보지만, 이번 연설엔 북한은 협상을 통해 설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도 깔려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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