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라는 선언에 반대하는 결의안이 찬성 128표로 통과되고 있다. 뉴욕/신화 연합뉴스
유엔총회에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언을 거부하는 결의안이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영국 등 미국의 최고 동맹국까지 미국에 등을 돌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신 추락과 고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엔총회는 21일(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특별 본회의를 열어 이른바 ‘예루살렘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에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유럽 각국 등 128개국이 찬성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롯한 9개국만이 반대했고, 35개국은 기권했다. 비슷한 내용의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이 미국의 거부권(veto) 행사로 무산되자, 유엔총회로 ‘직행’한 것이다. 유엔총회 결의안은 과반의 지지를 받으면 채택된다.
찬성국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미국의 주요 서방 동맹국 및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미국 동맹국들이 들어갔다. 한국도 찬성했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멕시코는 기권했다.
반대 국가로는 당사자인 미국과 이스라엘 외에 과테말라, 온두라스, 마샬군도, 미크로네시아, 나우루, 팔라우, 토고 9개국이었다. 태평양의 군소 섬 국가가 대부분이다.
결의안은 예루살렘의 지위를 바꾸는 어떤 결정도 법적 효력이 없으며, 따라서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해 “예루살렘의 지위에 관한 최근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이번 회의는 아랍권 국가들과 이슬람협력기구(OIC)를 대표한 터키와 예멘의 요청으로 개최됐다.
이번 유엔총회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상징성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선언’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을 공식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에도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이날 표결 직전 유엔총회장 연단에서 “미국은 주권국가로 우리의 권리를 행사한 이유로 총회장에서 공격 대상으로 지목된 이날을 기억할 것”이라며 “(유엔에) 가장 큰 기여를 하라고 다시 한번 요청받을 때 이것을 기억할 것”이라며 수차례 ‘경고’했다. 헤일리는 “미국은 예루살렘에 우리 대사관을 설치할 것이고, 그것이 미국 국민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라며 “유엔에서 어떤 투표도 그 문제를 달라지게 하지 못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날 투표 결과를 보면, 미국의 ‘엄포’는 효력을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대표와 기권표가 40여개국에 이르렀지만, 통상적인 유엔총회 표결에서도 20~30개국의 반대·기권이 나오기 때문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표결 전날인 20일 결의안에 찬성하는 나라들한테는 미국의 원조를 끊겠다는 ‘협박’까지 가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그들은 수억달러, 심지어 수십억달러를 가져가고 우리한테는 반대하는 투표를 한다”며 “우리를 반대하는 투표를 하게 내버려둬라. 우리 돈이 절약된다.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헤일리 대사도 같은날 트위터에 글을 올려 “우리가 도왔던 나라들이 우리를 겨냥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는다”며 “우리의 결정을 비난하는 투표가 있을 것인데, 미국은 그 이름들을 적어둘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유엔총회에서 미국에 반대하는 국가들에게는 원조를 끊을 것이라는 트럼프의 발언으로 미 행정부는 곤혹스런 처지에 빠졌다.
헤더 노어터 국무부 대변인은 “대통령의 외교정책팀은 다른 나라와 협력하는데 여러가지 선택지를 강구할 권한을 부여받았으나,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며 “대통령은 어제 유엔 투표가 외교관계 및 다른 나라에 대처하는 고려할 유일한 요인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평했다. 티모시 레더킹 걸프 지역 담당 부차관은 트럼프의 발언은 “공허한 위협이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결의안에 찬성한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연합에 대해 질물 받자 언급을 회피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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