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8일(현지시각) 내놓은 새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경쟁자”로 규정하고 무역·경제 의제를 앞세웠다. 대체로 지난해 대선 때의 ‘미국 우선주의’ 공약들을 모아놓은 듯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보고서는 “강대국 간 경쟁이 돌아왔다”며, 중국과 러시아를 두고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침해하려고 시도하면서 미국의 힘과 영향력, 이해에 도전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중·러를 미국의 “라이벌 강대국들”이라고 언급했다. 국제정치 지형이 미·중·러의 ‘3극 체계’로 재편될 수도 있다는 전망 위에서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견제를 본격화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특히 보고서는 중국에 대해 “위반, 속임수, 경제적 침공에 더는 눈을 감지 않겠다”며 무역 불균형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 “중국이 장래성 있는 미국 기술에 투자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를 취하겠다”며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대한 견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아울러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지위를 대체하고, 국가 중심의 경제 모델을 확장하며,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지역 질서를 재편하는 방안을 추구하고 있다”며 아시아에서의 패권 도전도 용납할 수 없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함은 충돌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며, 무적의 힘이 가장 확실한 방어 수단”이라고 밝혀, 군사력 증강 등으로 중국과 ‘근육질 경쟁’을 벌일 것임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1개월 만에 내놓은 이 보고서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한 국내용 성격도 깔려 있다. “경제안보가 국가안보”라며 미국의 경제 부흥을 약속한 것이나, 이민 규제 강화는 지난해 대선 때 단골로 쓴 메뉴들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놀랄 정도로 정상적”이라며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됐더라도 쉽게 나올 수 있는 주류들의 외교적 정책 원칙들을 혼합했다”고 평가했다. 또 “북핵 문제에서 함께 대처해나가야 할 중국에 대한 표현이 예상보다 다소 부드러워진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뉴욕 타임스>는 “보고서는 30년 동안 초강대국들의 경쟁이 휴가 기간을 보낸 것으로 묘사한 뒤 ‘휴가는 끝났다’는 것을 암시했다”고 분석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핵 전략이 눈에 띄었다”며 “대놓고 핵을 강화하겠다고 밝혀 냉전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중국을 자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국가로 규정한 것에 “어떤 국가와 어떤 보고서든 사실을 왜곡하고 악의적으로 비방하려 한다면 모두 헛수고일 뿐”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고의적으로 중국의 전략 의도를 왜곡하는 것을 멈추길 촉구한다”며 “냉전적 사고와 제로섬 게임 등 구시대적 관점을 버리지 않으면 스스로 손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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