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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틸러슨 “북과 전제조건 없는 만남 가능”…대화 문 열리나

등록 2017-12-13 18:15수정 2017-12-13 21:49

12일 토론회 연설서 ‘비핵화’ 조건 없는 대화 첫 제안
“(북핵) 프로그램을 포기해야 대화하는 건 비현실적”
대화 기간 핵실험, 미사일 발사 없는 ‘휴지기’만 언급
백악관 “북한에 대한 대통령 입장 바뀌지 않았다” 성명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2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애틀랜틱 카운슬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공동 주최한 ‘환태평양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 토론회에서 ‘전제조건 없는 북-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포함한 대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2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애틀랜틱 카운슬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공동 주최한 ‘환태평양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 토론회에서 ‘전제조건 없는 북-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포함한 대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공개 행사에서 북한에 상당히 적극적인 대화 손짓을 보냈다. 북한의 지난달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더욱 고조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 재개의 문턱을 크게 낮춰 북한에 공을 떠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틸러슨 장관은 12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공동 주최한 ‘환태평양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 토론회에 나와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첫 회동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틸러슨 장관은 이어 “일단 만나보자. 북한이 원한다면 날씨 얘기를 할 수 있다. 사각 테이블인지 둥근 테이블인지에 흥미를 갖는다면 그것에 관해 얘기할 수도 있다. 일단 최소한 테이블에 앉아 얼굴을 마주 봐야 되지 않겠냐”며 적극적인 대화 의사를 표명했다.

틸러슨 장관이 말한 ‘전제조건’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기부터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대화 재개 조건의 불문율처럼 여겨온 ‘북한의 비핵화 의지 및 진정성 있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도 최근까지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할 수 없다며 비슷한 조건을 내건 바 있다.

실제 틸러슨 장관은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포기할 준비를 하고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라고만 얘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북한은 이미 거기(핵프로그램)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도 그 점에 대해 매우 현실적”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자신의 입장이 같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틸러슨 장관은 협상이 시작되면 모든 현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그는 “협상이란 많은 것에 대해 논의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북한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우리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싶은 것을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한 로드맵을 짜기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선 대화-후 로드맵’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틸러슨 장관은 대화와 관련한 “유일한 조건”으로 세가지를 제시했다. 첫번째는 대화 시작 전 추가적 핵·미사일 실험을 중지하는 “휴지기”다. 두번째 조건으로는 “대화하고 싶다는 것을 우리한테 얘기해야 한다”는 점을 얘기했다. 세번째는 “대화 도중에 (핵·미사일) 장비 시험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세가지 조건은 북한이 최근 아이시비엠을 발사하기 전에 나온 이른바 ‘틸러슨 플랜’을 재확인한 것이다. 틸러슨 플랜은 ‘60일 이상 도발하지 않고,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는 것을 직접 밝히면’ 북한과 탐색적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틸러슨 장관이 대화 재개의 문턱을 크게 낮춘 데는 북한이 핵무기를 테러집단 같은 비국가행위자에 판매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억지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북한) 핵무기 부품 일부들이 이미 상업 시장에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미 당국자들 사이에서 북한의 핵무기 확산 우려에 대한 언급이 부쩍 잦아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틸러슨 장관은 협상 노력 실패에 대비해 군사적 옵션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첫번째 폭탄이 떨어질 때까지는 외교적 노력을 계속하겠다”면서도 “내 입장에선 실패에 대비해 개발해온 많은 군사적 옵션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무력 사용) 차례가 되면 그도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북한에 경고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워싱턴의 한 행사에서 “바로 지금이 무력 충돌을 피할 마지막이자 최고의 기회”라며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에 대해 미 외교 전문매체 <포린 폴리시>는 “북한과의 협상 문을 활짝 열었다”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래 지금까지 북한을 향한 가장 분명한 외교적 접근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시엔엔>(CNN)도 “(핵·미사일) 시험과 (트럼프 대통령의) 조롱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외교에 참여하자는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초대장을 북한에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를 지낸 위성락 전 러시아대사는 “(미국의) 기존 입장과 같은 것”이라며 “현 국면에 영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한반도 정세의) 현실은 도발과 압박이라는 강 대 강 대치 국면으로 (한반도 위기설이 불거졌던 4월과 9월보다) 지금이 더 악화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도 행정부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틸러슨 장관의 노력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우려했다. 백악관은 틸러슨 장관의 발언 직후 “북한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는 성명을 발표해 여러 해석을 낳았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3일 틸러슨 장관 발언에 대해 “북한이 도발과 위협을 중단하고 대화에 복귀해야 한다는 미국 쪽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으로 평가한다”며 “한-미 양국은 북핵 불용 원칙 하에 평화적 방식의 완전한 북핵 폐기라는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다양한 형태의 접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틸러슨 장관 발언이 미국 행정부의 정리된 입장인지 불분명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향후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 여부는 공을 넘겨받은 북한의 대응이 중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북한은 반민반관 대화 등을 통해 비핵화 문제는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없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지은 전정윤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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