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간의 아시아 순방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전용 헬기인 마린 원을 타고 백악관 사우스론에 도착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국 외교 전문가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경제적 고립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과정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티피피) 탈퇴 입장을 재확인하고, 일본은 미국을 뺀 11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티피피(CPTPP·시피티피피)를 타결했기 때문이다.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은 14일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 순방 역사가 쓰여진다면, 티피피에서 빠져나온 결정이 가장 중대하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접근은 21세기를 규정할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을 주변부로 밀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 기업들은 자력으로 아시아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또한 미국의 동맹들이 홀로 중국의 거대 경제권과 경쟁하도록 버려둠으로써 전략적 비용을 치르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회성의 긴 협상 목록이나 양자 협정은 그 손실(티피피 탈퇴)을 보충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맨스필드재단의 프랭크 자누지 대표도 지난 12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미국이 티피피를 폐기하면서 일본은 11개국만으로 티피티를 공고히하며 (중국에 대한) 미래의 위험을 분산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아시아 첫 순방국인 일본에서 “우리는 티피피보다 규모가 더 크고 방식이 복잡하지 않은 무역을 할 것”이라며 티피피에 재가입할 계획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티피피는 일본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전략적인 사안이다. 경제적 측면을 보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이미 2010년 중국에 추월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30년 구매력평가(PPP) 기준 국내총생산 전망치를 보면, 중국은 26조3072억달러로 세계 1위에 오르며, 일본은 4조8786억달러로 그 6분의 1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2050년에는 양국 차이가 거의 10배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내용의 민간 보고서도 있다.
이처럼 중-일 간 경제력 간극이 벌어지면, 일본의 대중국 군사·외교적 지렛대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일본이 티피티 속에서 관세 인하와 무역 규제를 통해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장 진출을 확대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티피피는 일본이 미국과 함께 아시아·태평양 질서를 주도하고 중국을 견제한다는 정치·외교적 의미도 강했다. 미국이 티피피에서 발을 뺐다는 것은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견제의 책임을 일본에 넘기겠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미국을 뺀 티피피가 큰 틀에서 합의된 것을 두고 “큰 전진이다. 조기 발효되도록 논의를 주도해나가겠다”고 한 발언은 미국의 워싱턴 전략가들한테는 ‘독립선언’으로 들릴 수도 있다.
또한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국이 티피피에 가입하는 방안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했고, 내년 타결을 목표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협상중이다. 중국의 정책으로 이어질지 등은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티피피까지 중국이 ‘접수’하면 미국한테는 아시아를 잃어버리는 외교적 패배로 기록될 수 있다.
워싱턴 도쿄/이용인 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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