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했다. 공동취재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6일)과 문재인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7일)에서 비교적 절제된 대북 메시지를 보내다가, 8일 국회 연설에서 갑자기 북한 인권 문제를 정면 거론하며 대북 기조를 강경한 쪽으로 확 바꿨다. 이에 따라 한·중·일 3개국 순방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9일 정상회담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핵·북한 문제와 관련해 원칙적 입장만 밝혔다. 상대국 방문 때 ‘현지 프리미엄’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것이 관례여서 북핵·북한 문제에 강경한 아베 총리의 입장을 전폭 지지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이 빗나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전 세계에 대한 위협이라고 강조하면서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고만 밝혔다. ‘전략적 인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는 말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부터 줄곧 해온 원론적 언급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7일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와 우리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좋고 전 세계 시민들에게도 좋다”고 말했다. 특히 ‘북-미 직접 대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엔 “모종의 움직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다”며 이례적으로 신중한 답변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모종의 움직임’은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나 고위급 특사의 방북 등 북-미 간 대화 재개를 의회를 상대로 설득하고 있다는 지난달 25일 <엔비시>(NBC) 방송의 보도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의 기자회견에서 대북 발언 수위를 갑자기 크게 낮춘 것에 놀라움을 표시할 정도였다. <뉴욕 타임스>는 “북한에 ‘화염과 분노’를 퍼붓겠다는 위협과 ‘리틀 로켓맨’ 같은 북한 지도자 김정은에 대한 조롱 섞인 언급이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불과 하루도 채 안 된 8일 오전 국회 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폭군’, ‘독재자’로 규정하고 “북한은 낙원이 아니라 지옥”이라고 비난 수위를 다시 끌어올렸다. 지난 9월19일 유엔총회 기조연설과 비교하면, “북한 완전 파괴”나 “로켓 맨이 자살 임무 수행”에 필적하는 수준의 거친 발언은 없었지만 종교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을 동원했다는 점에서는 구조적으로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중국에 북한과의 모든 무역·기술 관계를 단절할 것을 촉구한 점을 보면,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에 대북 제재 강화를 거세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악관 참모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순방 관련 사전 브리핑에서 중국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를 뛰어넘는 독자 제재를 요구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국회 연설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중국은 분명히 지금껏 그 어느때보다 (대북) 제재를 잘 이행하고 있으나, 여전히 국경에서는 (북-중간) 거래가 있고 금융거래도 일부 포착된다. 지금 국면을 보면 이런 구멍들을 그냥 넘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국이 원유 공급 차단 등은 하지 않겠지만 미국의 통상 공세를 방어하기 위해 대북 압박에는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도 7일 중국 당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북-중 접경 지역인 랴오닝성 단둥 소재 관광업체들에 평양 관광을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일단 최대한 성의 표시는 하겠다는 뜻이다.
반면에 한국·일본과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이는 중국이 대북 특사 파견 등을 통한 북한과의 관계 회복도 시야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이럴 경우 중국의 대북 제재 협력 수위는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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