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한·미·일 정상이 모여 오찬을 하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발표한 대북 제재 관련 행정명령은 금융과 무역을 망라할 정도로 포괄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초 중국 방문을 앞두고 ‘북한과 거래를 끊으라’며 대중국 압박 수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우선 행정명령 내용을 보면, 금융 분야에선 제재 목록에 오른 북한 개인·단체와 직접 거래하거나 거래를 도와주는 외국 금융기관에 대해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재무장관에게 부여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거래가 금지된 북한 기업·사람을 돕는 전세계 모든 금융기관의 모든 거래를 동결 또는 차단한다는 점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번 행정명령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북한의 미국 금융망 접근 차단에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이미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의 개인·단체와 거래하는’이란 조건이 붙어 있어, 미국 정부가 정상적 거래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엄밀한 의미의 ‘세컨더리 보이콧’과는 거리가 있다.
또 이번 행정명령이 북한의 물품 및 서비스, 기술에 대한 수출과 수입에 종사하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한 점이나, 북한에 다녀온 모든 선박과 비행기는 180일 동안 미국에 입항할 수 없도록 하는 조처도 내용적으로는 강력한 편이다. 북한의 교역을 전반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일부에선 이를 두고 “무역 봉쇄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행정명령이 중국의 기업·은행을 겨냥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 금융 및 수사당국은 지난 몇개월 동안 미국에 진출한 중국 은행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벌여 북한 관련 의심 계좌를 꽤 적발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전날인 20일 중국의 초상은행과 농업은행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며 미 정부의 독자 제재를 촉구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러면서도 이번 행정명령은 북한과의 과거 금융 거래 내역은 문제 삼지 않겠다는 타협책을 제시했다. 과거 거래까지 문제 삼아 제재할 경우 중국 은행들과 거래하는 미국 기업들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므누신 장관이 이번 행정명령은 “미래 지향적”이라고 얘기한 배경이다.
이번 행정명령이 중국 은행들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중국 은행들이 (북한 쪽과) 차명계좌 등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거래하던 부분이 있었다”며 “중국 은행들에 향후 적발 땐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경고하는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입장에선 지난 몇개월 동안 이미 대응책을 모색해왔을 가능성이 높아 당장 큰 타격이 되지는 않을 수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위험을 무릅써야 해 거래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또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선 중국만큼 강하게 압박을 하지 못하고 있어, 북한이 러시아를 우회로로 활용할 수도 있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앞두고 성과를 내기 위해 대중국 압력을 계속 높여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가 원유 중단에 ‘꽂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한·미·일 정상회의 모두발언에서 행정명령 서명 소식을 전한 것도 한·미·일 단일 전선을 과시하면서 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외국 은행들은 분명한 선택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과 거래하든지 북한의 불법 정권의 무역을 돕든지 하라”며 “수치스러운 관행에 대한 관용은 이제 끝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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