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12일 백악관에서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순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 중국, 일본을 방문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확정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뒤 첫 아시아 순방으로,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정세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 논의는 상당히 구체적인 정도까지 진척됐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12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을 만났다고 중국 <인민망>이 13일 보도했다. 양 국무위원은 이 자리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요청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 중국을 국빈방문하게 되며, 중국은 미국과 함께 노력해 이번 방문이 긍정적 성과를 얻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은 다음달 18일부터 열리는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와 11월 중순으로 예정된 아펙 정상회의 사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8월 중순께 이미 미국은 중국에 11월초 중국 방문을 제안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12일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11월 초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보면 북핵 및 무역 문제와 관련해 미-중의 중·단기 전략을 가늠해볼 수 있다. 4월에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에서 열린 첫 미-중 정상회담은 양쪽의 간 보기 성격이 짙었지만, 다음 정상회담은 양쪽이 지난 몇개월간 적지 않은 신경전을 펼치며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끝낸 뒤 전략을 가다듬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당대회라는 국내 정치 일정에 발이 묶여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줄곧 수세적이었던 중국이 11월 정상회담를 계기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대미 관계로 전환할지 여부가 관심이다. 국내 정치적 부담을 덜어낸 시 주석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협상 국면으로의 전환을 위해 보폭을 넓힐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무역·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거칠게 압박해온 미국과,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성에 지친 중국이 갈등을 겪으며 벌써부터 미-중 관계의 피로증이 나타나고 있다. 또 트럼프 행정부의 그간 행태에 비춰보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강하게 몰아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략적 불신이 이미 꽤 쌓여있는 상태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미-중 관계가 협력적 관계로 바뀔 것으로만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채택 이후 미국 분위기는 착종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와 회담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대북 제재 결의는) 또 하나의 아주 작은 걸음에 불과하고, 대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15 대 0 표결로 채택된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들에 비하면 이번 제재는 별거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북 제재 수위가 낮다는 언론의 비판에 대한 변명 성격이 짙어 보인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날 뉴욕에서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중국이 유엔 제재들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중국을 추가로 제재할 것”이라며 “중국이 미국 및 국제 달러화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미국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 통신에 “중국에 시간을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론이 악화되면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더욱 압박하라며 중국을 다시 몰아칠 수 있다.
워싱턴 베이징/이용인 김외현 특파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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