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새 아프간전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도 16년 동안이나 뾰족한 해법 없이 지루하게 공전해온,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라 불리는 아프가니스탄전의 늪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저녁 황금시간대인 밤 9시에 버지니아주 알링턴 포트마이어 기지에서 전국적으로 생중계된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저지할 것”이라며 “언제 공격할지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공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 본능은 (미군) 철수였고 나는 본능을 따르기를 좋아하지만,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앉으면 결정이 다르다고 들었다”며 “급하게 철군하면 공백 상태가 되고, 이슬람국가와 알카에다를 포함한 테러리스트들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군대는 이기기 위해 싸울 것”이라며 “마지막에는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앞으로의 군사 행동을 위한 군인 수와 계획을 말하지 않겠다”며, 예상과 달리 추가 파병 규모나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폭스 뉴스>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 직전에 4천명 규모의 추가 파병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아프간에 주둔하는 미군 병력은 8400명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한 새 아프간 전략에는 중부사령관을 지냈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아프간에서 근무했던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고립주의를 강하게 옹호했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퇴출과 동시에 발표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 전통적인 공화당 대외 노선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강한 레토릭(말치장)에도 불구하고 새 아프간 전략을 고립주의 대외 정책과의 완전한 결별로 보기는 어렵다. 되레, 아프간에서의 악화되는 전황과 자신의 ‘본능’이자 트럼프 지지자들의 정서인 고립주의 사이에서 일종의 절충점을 찾으려는 ‘제한적 개입주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간에서의 승리를 위해 군부에 ‘백지수표’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또한 추가되는 미군 4천명이 탈레반이나 이슬람국가와의 전투에 직접 투입되는 것도 아니다. 이들 임무의 우선순위는 아프간 군을 훈련시켜 반테러리즘 작전을 대리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프간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파키스탄에 대한 외교적 압박과 인도에 대한 협조 요청 등으로 미국 혼자 부담을 지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했다는 점에서도 오바마 행정부 기조와 엇비슷하다. 파키스탄은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엔 ‘동맹’으로 격상되며 미국의 반테러 작전의 핵심이었지만, 아프간과의 국경지역에 탈레반의 온상을 제공하고 파키스탄 정보기관과 탈레반 등의 유착 사실이 드러나면서 오바마 행정부와는 불편한 관계였다.
이번 전략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도 그의 전임자를을 괴롭혔던 아프간에 깊이 연루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군사적 결실을 거두기 쉽지 않은 아프간 전황에 비춰볼 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상당히 정치적 위험 부담이 따르는 새 아프간 전략을 선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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