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에서 퇴출된 트럼프 대통령의 극우성향 측근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AFP 연합뉴스
’배넌이 있건 없건, 트럼프는 트럼프일 것이다.’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퇴출된 19일 <시엔엔>(CNN)은 배넌 이후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이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와 트럼프 행정부 문제점의 근원은 트럼프 자신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배넌은 그런 트럼프의 원인이 아니라 징후일 뿐이라고 방송은 지적했다.
‘배넌 퇴출’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트럼프의 불쾌감 때문이다. 백악관에 새로 포진한 허버트 맥매스터 안보보좌관이나 존 켈리 비서실장 등 전통 우파들과의 권력암투는 부차적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배넌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장본인처럼 평가되는 데 불쾌감을 드러내왔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종종 배넌에 대해 질문 받으면 “그는 나의 대선 운동 때 나중에 합류했을 뿐이다”라고 답해왔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배넌의 퇴출을 수개월 전부터 고려해왔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스캔들로 낙마한 마이클 플린 전 안보보좌관의 후임으로 허버트 맥매스터가 백악관에 입성한 이후 배넌의 영향력은 축소돼 왔다. 배넌은 4월부터는 국가안보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극우 인종주의자들의 폭력으로 인한 샬러츠빌 사태 이전부터 트럼프를 만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는 자신의 권좌 배후에 있는 실세이자 두뇌로 배넌을 묘사한 <타임>의 보도에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블룸버그뉴스>의 기자 쓴 <악마의 거래>라는 책에서 배넌이 트럼프의 대선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묘사된 내용에도 매우 기분 나쁘다는 반응을 보였다.
15일 기자회견에서도 트럼프는 배넌에 대해 “그는 좋은 친구이다. 인종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나의 대선 운동에 나중에 합류했다.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그 의미는 첫째, 배넌이 표방하는 백인민족주의 세력과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계속 같이 가겠다는 것이다. 둘째, 배넌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거취가 결정되는 수단일 뿐이라는 점이다.
트럼프는 이 기자회견에서 샬러츠빌 사태는 “양쪽에 모두 책임이 있다”는 발언으로 인종주의 논란을 다시 키웠다. 이에 존 켈리 비서실장이 망연자실했다는 전언은 샬러츠빌 사태를 둘러싼 분란의 동력은 사실상 트럼프 본인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럼프 정권을 둘러싼 논란과 분란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트럼프 본인의 변덕스럽고 선동적인 언사다. 둘째는, 트럼프 정권과 공화당의 전통 우파와의 정책과 노선 갈등이다. 이는 이민·무역·환경 문제 등에 대한 트럼프 정권의 국수적이고, 고립적인 노선에 대한 공화당 주류들의 반발로 표현된다.
배넌이 퇴출된 뒤에도 트럼프 정권 내홍의 두가지 요인이 바뀔 전망은 별로 없다. 트럼프는 보스턴에서 평화적으로 열린 반인종주의 집회에 대해서도 “반경찰 선동자로 보인다”고 트위터에 쓰는 등 언행을 바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백인민족주의 이념의 플랫폼이라는 <브레이트바트뉴스>에 복귀하는 배넌에 대해서도 19일 트위터에서 “(배넌은) 브레이트바트에서 강경하고 영리한 새로운 목소리가 될 것"이라며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른다. 가짜뉴스는 경쟁이 필요하다!"라고 적었다. 배넌이 백악관 밖으로 나가서 자신을 반대하는 기성주류들과 싸워줄 것을 당부한 것이다.
배넌 역시 자신의 경질이 발표된 18일 “내 손은 다시 내 무기로 돌아갔다”며 “반대자들을 분쇄”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의회에서 공화당이 자신들의 의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의제를 지지한다면, 모두에게 달콤하고 밝게 될 것이고, 행복한 식구가 될 것이다”면서도 그런 달콤함을 조만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공화당 의원들을 향해 차기 선거에서 낙선시키겠다고 위협해왔다. 자신의 열렬한 지지층인 보수 성향의 백인 중하류 층의 지지가 없다면, 공화당의 기성 주류 의원들의 당선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오는 9월26일 열리는 앨라배마 상원의원 보궐선거 예비선거는 배넌 이후 트럼프 정권 권력투쟁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전망했다.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임명으로 공석이 된 상원의원직에 공화당 주류의 지지를 받는 루터 스트래인지 주 검찰총장과 <브레이트바트뉴스>로 대표되는 백인민족주의 세력들이 지지하는 로이 무어 주 대법원 판사가 격돌하고 있다. 배넌의 해임으로 트럼프 정권의 권력투쟁은 백악관 안에서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