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연설하고 있다. 베드민스터/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발언 수위가 ‘화염와 분노’에서 ‘협상’에 이르기까지 오르락내리락을 거듭하고 있다. 전략적 포석과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충동적 기질이 뒤섞여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각)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더 이상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며 “북한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 수위를 가파르게 끌어올렸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아이시비엠)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 핵탄두 개발에 성공했다는 국방부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된 직후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이 위협하면”이라는 애매한 전제를 달고 있었다는 점에서, 미국이 대북 군사행동을 단행하는 것 아니냐는 전쟁 공포감을 확산시켰다.
이에 맞서 북한이 괌 주변을 타격하겠다는 맞대응 성격의 엄포를 놓은 다음날인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이 괌에 무슨 일을 하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일이 북한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괌 포위사격’ 검토를 중지하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고 방어적 성격이 강했다는 점에서 ‘화염과 분노’ 발언에 비해선 위협 수위가 다소 낮은 편이었다. 또 그는 같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항상 협상을 고려할 것이다. (협상할) 때가 됐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며 협상에 대한 강한 의지도 내비쳤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아침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 현명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지금 군사 해법이 완전히 준비돼 있으며, 장전됐다”고 말했다. ‘군사 해법’이란 위험한 단어를 꺼내들면서까지 대북 공세 수위를 다시 끌어올렸다.
같은 날 오후 국가안보회의 뒤 연 기자회견에서는 기조를 또 바꿨다. 그는 “나만큼 평화해법을 선호하는 사람이 없다. 희망을 갖고 (대북 문제를) 보는데, 모든 게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외교적 해법’을 강조해온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기자회견장에 대동한 것 자체가 메시지였다. 그는 “나와 틸러슨 장관은 같은 입장”이라며 틸러슨 장관에게 힘을 실어줬다. 틸러슨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해법을 선호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했는데도 토를 달지 않았다.
때마침 미 국무부의 조셉 윤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박성일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미국 담당 대사가 수개월간 정기적으로 접촉하며 북-미 관계 개선과 북한 억류 미국인들 송환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11일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호전적 발언에도 불구하고 일선 부처에 대북 군사행동을 준비하는 징후는 없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11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에서 ‘군사행동 같은 것은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미국 국방부과 군은 상대적으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들은 “시간적 압박에 따른 초조함과 심리전적인 성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복수의 외교 소식통들이 12일(현지시각) 전했다.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개발 완성이나 아이시비엠 내년 배치 가능성과 관련된 내부 정보평가가 나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서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본능적 전략’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유리한 협상을 전개시키기 위해 상대방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전략을 즐겨 구사했다. 이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외교 문제에서 ‘긴장 완화를 위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형태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뉴욕 타임스>도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직설적인 발언들와 관련해 주변 사람들에게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 탑재 미사일을 완성하기 전에 위기를 조장해 김정은을 협상장으로 끌어오려는 의도’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국가안보회의가 끝난 뒤 나온 발언들은 측근들의 만류 탓인지 다소 정제돼 있는 것도 특징이다.
미국 국내정치적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측근들에 대한 ‘러시아 스캔들’ 수사로 정치적 곤경에 처해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공격거리를 찾고 있다. 그의 입장에서 ‘호전적 언사’를 하는 북한은 말폭탄을 퍼부을 수 있는 좋은 공격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북 발언들은 지지자들에게 휴가지에서도 대통령직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제스처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전법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뉴욕 타임스>에 “김정은이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 민주당 중진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김정은의 더 공격적인 대응을 촉진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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