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아이시비엠) 시험 발사에 대응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인사들이 일제히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며 중국을 비난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부도 이에 점점 동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북핵·미사일 문제의 역할과 책임을 중국에만 전적으로 떠넘기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각) “중국은 북한과 관련해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말만 한다”며 “우리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30일 일제히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인 ‘최대의 압박과 관여’ 정책과 연관돼 있다. ‘최대의 압박’을 전적으로 중국 역할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도 중국 역할론에 기대고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모든 것을 지우고 싶어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역할론만큼은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역할론’은 트럼프 행정부도 북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저지할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음을 방증한다. 대북 군사행동은 한국민과 한국에 체류하는 미국인들한테 막대한 인명 피해를 가져온다. 대북 협상은 주고받기가 이뤄져야 하는데, 미국 행정부는 북한에 주기는 싫고 받기만 하고 싶어한다. 여기엔 협상 실패에 대한 관료들의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남는 대안은 대북 제재 압박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과 교류가 없는 미국은 자체적으로로 북한을 제재할 수 있는 지렛대는 없다. 그러다보니, 북한이 경제교류의 90%가량을 의존하는 중국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하청론’에 가까운 중국 역할론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부터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중국 역할론’에만 의존한 동안 북한은 오히려 핵·미사일 능력만 증강시켜왔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원유 공급 중단 등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는 중국의 대북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어서 중국이 수용할 가능성이 낮다. 중국이 원유 공급을 중단할 경우 북한의 경제 사정 악화로 탈북자들이 증가하고, 이는 동북 3성 지역의 불안정으로 연결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이 ‘중국역할론’만 거듭 주문하는 데 대한 중국의 불만과 반발도 커지고 있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도 북한 미사일 발사에 따른 제재 강화에는 동의 하겠지만, 한미가 중국 책임만 거론하면서 압박하면 한미의 요구대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북핵·미사일 문제에 대해 미국이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중국에만 미루는 건 북핵을 이용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북핵 문제에서 미국 책임은 따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북 핵·미사일과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 대 중-북 대립 구도가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적절한 수준의 제재에 합의하더라도 중국을 움직이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북한의 핵능력 증강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시간 간격 딜레마’도 계속돼 왔다.중국 및 국제사회가 제재를 단행할 때쯤이면 북한은 이미 제재 회피 수단을 개발해 멀리 달아나는 숨바꼭질 게임을 해왔다.
미국이 중국의 대형은행이나 대기업을 제재하면서까지 대북 제재를 강화하라고 중국을 압박하기도 쉽지 않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히 연결된 미국의 기업들에게도 곧바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중국의 작은 은행이나 기업들을 대상으로 제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북핵 능력 고도화 저지를 위한 중국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존박 케네디 행정대학원 코리아실무그룹 소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10개 갖는 것과 100개 갖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며 “중국 정부가 북한으로의 전략물자 유입은 적극적으로 차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을 배제한 채 중국 역할론을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것은, 북핵 문제의 근원이나 해법에 대한 안이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워싱턴 베이징/이용인 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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