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북한, 러시아, 이란 3개국에 대한 제재 법안을 묶어 일괄 처리하기로 했다. 하원이 상원의 러시아·이란 제재 법안 신속 처리 요구를 수용하면서, 동시에 하원에서 이미 통과된 대북 제재 법안을 끼워넣어 상원에 처리를 촉구하는 식의 상·하원 간 암묵적인 타협책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 의회 전문지인 <더 힐> 등은 22일(현지시각) 하원의 공화·민주 양당 협상 대표들이 3국 제재 법안의 일괄 처리에 전격 합의하고, 25일 하원 본회의에서 표결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이란 제재와 함께 일괄 처리하기로 한 대북 제재 법안은 5월4일 하원 본회의에서 찬성 419명 대 반대 1명으로 통과된 ‘대북 차단 및 제재 현대화법’(대북 제재 현대화법)과 내용상으로는 동일하다. 하지만 ‘대북 제재 현대화법’은 상원으로 넘겨진 뒤 처리가 계속 지연돼왔다. 워싱턴의 의회 소식통은 “상원에선 이미 존재하는 대북 제재법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강해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었다”고 전했다.
‘대북 제재 현대화법’은 행정부의 제재 권한을 대폭 확대시킨 게 특징이다. 행정부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필요에 따라 인도적 목적을 제외하고는 다른 국가들의 북한에 대한 원유 및 석유제품 판매와 이전을 금지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국가들의 북한 노동자 고용, 북한의 식품·농산품·어업권·직물의 구매나 획득에 대한 제재도 행정부 재량에 맡겼다.
일괄 처리 법안은 8월 의회 휴지기 시작에 앞서 상임위 등을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바로 상정하는 신속처리 절차로 진행돼, 재적 의원 과반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공화·민주당이 합의했기 때문에 현재로선 통과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정치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의회가 이에 대항하는 3분의 2 찬성표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줘 기선 제압을 하는 의미가 있다.
일괄 처리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면 상원 표결을 다시 거쳐야 한다. 상원이 지난달 14일 러시아·이란 제재법을 97대 2로 일괄 처리했지만, 형식적으로는 대북 제재법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대 러시아 제재법 처리에 미지근했던 하원마저 상원의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에 일괄 처리 법안이 상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다만 상원 안에서 대북 제재법의 수정을 요구하거나 분리 처리 목소리가 커질 경우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
한편 하와이주가 북한의 핵 공격에 대비해 탈냉전 이후 처음으로 오는 11월부터 매달 주민대피 훈련을 실시한다고 현지 언론들이 21일 전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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