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 백악관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만드는 스텟슨의 사장 더스틴 노블릿과 함께 모자를 써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 주간을 선포하고 미국 50개 주 대표 상품들을 소개하는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1시간가량의 사적 회동을 추가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가 지난해 러시아 쪽 인사들과 비밀 회동을 한 사실이 폭로된 데 이어 두 정상의 2차 회동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러시아 스캔들’이 갈수록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일 푸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고 같은 날 저녁 G20 정상들의 부부 동반 만찬 자리에서 또 비공개 회동을 했다고 18일 보도했다. 이런 사실은 정치 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대표가 17일 고객들에게 보낸 뉴스레터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브레머 대표는 2명의 만찬 참석자한테서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회동 사실을 전해들었다며 “정상들은 (두 사람의) 활발한 대화에 어리벙벙하고 아연실색했다”고 전했다.
만찬장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옆자리에 앉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 중간쯤에 일어나 일부 정상의 불참으로 비어있던 푸틴 대통령 옆자리로 옮겼다. 두 정상은 한 시간가량 대화를 이어나갔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다자회의 만찬장에서 지정석을 벗어나 다른 정상의 옆자리로 간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는 외교 관례를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자리 배치는 개인적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사전에 조율된 것이기 때문에, 아베 총리한테 큰 결례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런 사전 조율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영어-일본어 통역사만 데리고 만찬장에 들어갔다. 따라서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는 전적으로 러시아 통역사에 의존했다. 러시아 쪽이 회동 내용에 대해 일방적으로 설명할 경우 검증할 방법이 전혀 없다.
게다가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미국의 유럽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푸틴 대통령과의 친밀한 관계를 과시한 것도 문제라고 미 언론들은 주장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우정을 다지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잘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백악관은 두 정상의 회동 사실 자체도 언론 보도 전까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눴는지는 그의 핵심 외교안보 참모들조차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러시아의 지난해 미국 대선 개입 및 트럼프 쪽 인사들과 러시아의 유착 의혹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백악관의 설명도 계속 바뀌고 있다. 숀 스파이서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과의 회동은 순전히 사교를 위한 것이었으며 1시간 미만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후 공식 성명에선 “두 번째 회동은 없었다. 만찬 끝 무렵에 짧은 대화만 있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푸틴과의 비밀 저녁이라고 쓴 가짜 뉴스가 역겹다. 모든 G20 정상들과 배우자들이 초대됐다. 언론도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트럼프 주니어와 러시아 변호사의 지난해 6월 회동 때 그동안 참석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던 ‘제8의 인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가 확인돼 로버트 뮬러 특검팀이 조사 중이라고 <시엔엔>(CNN) 방송 등이 보도했다. 제8의 인물은 이케 카베라제로, 아제르바이잔계 러시아 부동산 재벌인 아라스 아갈라로프가 운영하는 부동산 회사의 수석 부사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베라제 쪽 변호인은 “카베라제는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하는 미국 시민권자로, 러시아 정부와는 어떤 자격으로든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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