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조태열 유엔 주재 한국대사가 북한 미사일 발사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가 끝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아이시비엠) 발사에 대응해 5일 오후(현지시각)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날선 공방을 벌였다. 아이시비엠 발사 이전부터 북핵 문제를 놓고 상호 불신이 쌓여가던 미-중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러시아도 중국 입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중국을 겨냥한 강경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우선 대북 제재와 관련해 헤일리 대사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무역 카드’도 꺼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해 북한과 교역을 허용하거나 심지어 장려하는 나라들이 있다. 이런 나라들은 미국과도 무역을 계속하고 싶어한다”며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한테 북한과 미국과의 교역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는 압박이다.
헤일리 대사는 이어 “국제적인 안보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국가들과는 무역에 대한 우리 자세를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오늘 아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장시간 이 문제를 얘기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헤일리 대사가 중국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이어지는 발언에서 북한의 교역 가운데 90%가 중국과의 교역이며 “유엔 재재 강화의 상당 부분은 중국에 달려있다”고 지적한 점 등에 볼 때 중국을 겨냥한 발언임은 분명하다.
헤일리 대사는 미국이 추진하는 안보리의 새 대북 제재 결의 내용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했다. 그는 “북한의 군사 및 무기 프로그램으로 가는 원유 공급을 제한할 수 있다. 항공 및 해상 운송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새 대북 제재 결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며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방침도 밝혔다. 이로 미뤄볼 때, 미국은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는 특정 종류의 원유를 북한에 공급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중단할 것을 중국에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블라디미르 사프론코프 유엔주재 러시아 차석대사는 “제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고 즉각 반박했다. 이달 안보리 순회의장국인 중국의 류제이 유엔주재 대사는 회의장에선 제재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별도 기자회견을 열어 ‘쌍중단’(북한 핵·미사일 동결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거듭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이 대북 제재 수위를 놓고 팽팽한 대립을 보임에 따라 새 대북 제재 결의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도 입장을 정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워졌다. 강경한 미국 쪽 입장을 전적으로 찬성할 경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및 북핵 문제와 관련해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기 어려워진다. 한국 정부는 새 대북 결의에는 찬성하지만 구체적 수위에 대해선 입장을 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은 대북 군사 옵션을 놓고도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다. 헤일리 대사는 “우리가 가진 여러 능력 가운데 하나가 막강한 군사력”이라며 “해야 한다면 그것을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향으로 진입하지 않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초기 대북 정책 입안 과정에서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고 한 입장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으로,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중국과 북한을 모두 겨냥한 압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류 대사는 “중국은 한반도에서의 혼란과 충돌을 확고히 반대해왔다. 대북 군사 수단은 옵션이 아니다. 모든 당사국은 군사훈련을 자제해야 한다”며 헤일리 대사의 발언을 반박했다. 사프론코프 러시아 차석대사도 “군사 수단은 용인할 수 없다”며 중국 입장에 가세했다. 또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의 한국 배치가 역내 안정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며 역공을 펼쳤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