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도 북한이 지난 4일 시험발사한 미사일에 대한 평가를 애초의 ‘중장거리 미사일’(IRBM)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아이시비엠)로 바꿨다.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북한의 아이시비엠 시험 발사를 놓고 트럼프 행정부도 향후 대북 정책과 관련해 상당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미 언론들은 내다봤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4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북한의 아이시비엠 발사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북한의 아이시비엠 발사는 미국과 동맹국 및 협력국, 세계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이 4일 쏜 미사일을 ‘아이시비엠’으로 규정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이시비엠 발사를 군사적 응징까지도 내포하는 ‘레드 라인’(금지선)으로 공식 설정한 적은 없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아이시비엠 시험발사 준비 마감 단계’ 발언에 대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아이시비엠 발사 저지를 일종의 정책 목표로 제시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는 ‘정책 실패’로 여겨질 수 있는 이번 미사일 발사에 대해 상당히 격앙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뾰족한 정책 수단이 현재로선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애덤 마운트 미국진보센터 선임연구원은 <시엔엔>(CNN)에 “더 이상 북한이 문턱을 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다. 이미 북한은 문턱을 넘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도 다양한 대북 정책 수단을 검토한 뒤 뾰족한 것이 없다고 진단했다.
가장 손쉬운 수단은 대북 무력시위이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북한 핵실험설이 나돌던 지난 4월 “우리는 아르마다(무적함대)를 한반도에 보내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잠수함도 있다”며 무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위협’은 긴장 분위기를 끌어올린 것 외에는 그다지 효과가 없는 일시적 처방이었음이 이번 아이시비엠 발사로 입증됐다.
둘째, 대북 제재 강화다.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실효적 독자 제재는 이미 소진됐기 때문에, 북한과 밀접한 경제·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대북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 트럼프 행정부도 이전 행정부처럼 중국의 대북 압박을 강하게 요구해왔지만 미국의 중국에 대한 높은 기대치는 종종 빗나갔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선제 타격 같은 군사적 행동을 취하는 것인데, 이는 상당히 어렵다. 북한이 핵물질과 핵시설을 은닉한 장소를 모두 파악하기 어렵고, 한국에 대한 북한의 보복 공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틸러슨 장관도 이날 성명에서 “미국은 평화적인 방식만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넷째, 북한과 협상하는 것인데,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북한이 아이시비엠 시험발사 성공 등을 협상 수단으로 삼아 상응하는 대가를 더 많이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제임스마틴 비확산연구센터의 멜리사 해넘 선임연구원도 <시엔엔>에 “미국의 협상이 어려운 입장에 처할 것”이라며 “협상의 여지는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종류의 협상은 안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정책 제약 속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단기적으로는 무력시위를 하면서 중국을 압박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틸러슨 장관이 이날 “북한 노동자를 초청하는” 문제를 부각시킴에 따라, 북한 노동자 고용이 가장 많은 중국과 이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중국의 대북 원유 수출을 제한하는 문제를 놓고도 양쪽의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협조 요구에 미온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기업·은행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전격적으로 단행할 수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가 세컨더리 보이콧 실행의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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