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 항의하는 이들이 23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마/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4조1천억달러(약 4600조원) 규모의 2018년 회계연도 예산안을 23일 의회에 제출했다. 특히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예산은 대폭 삭감하는 대신 국방비 및 국경 치안 예산은 크게 늘려 ‘부자 예산’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내년 예산보다 미국 언론의 관심을 더 모은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날 함께 제출한 향후 10년간 중장기 예산 계획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재정 적자 축소를 위해 10년 동안 정부 지출을 4조3천억달러 줄이기로 했다.
지출 삭감의 희생양은 주로 저소득층이다. 저소득층 의료비용 지원제도인 메디케이드 6160억달러, 식료품 지원제도인 ‘푸드 스탬프’ 1930억달러, 대학생 학자금 1430억달러, 장애인 지원 720억달러가 각각 줄어든다. 미국인 5명 중 1명은 메디케이드, 10명 중 1명은 푸드 스탬프의 혜택을 받는 상황에서 저소득층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대신 트럼프 행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라는 대외정책 기조에 기초해 앞으로 10년에 걸쳐 국방비를 4690억달러 늘리기로 했다. 국경 경비에는 26억달러를 배정했으며, 여기에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비 16억달러가 포함됐다.
이번 예산안에 대해 믹 멀베이니 미국 백악관 예산국장은 “행정부가 실제로 세금을 내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예산안을 짠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비대한 예산을 짠 오바마 시대에서 드디어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저소득층 복지 예산이 크게 줄어든 것과 관련해 “선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고 표를 던져준 사람들에게 잔혹하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도 메디케이드 예산 삭감에는 부정적이어서, 이번 예산안이 의회 통과 과정에서 상당히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시엔엔(CNN) 머니>는 트럼프 대통령의 첫 예산안을 ‘부자를 위한 큰 선물, 빈자에겐 큰 삭감’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심지어 월가도 크게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호라이즌 인베스트먼트의 수석전략가 그레그 발리어는 “지출안의 핵심은 반빈곤 프로그램 예산을 10년간 거의 1조달러나 삭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이 1960년대에 실시한 메디케어 등 빈곤 추방 및 경제 번영을 위한 ‘위대한 사회’ 정책을 뿌리째 뒤흔드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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