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국제에디터석 국제뉴스팀 기자 withbee@hani.co.kr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국제사회가 항상 평온하길 바라는 국제뉴스팀 기자 황금비입니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니, 제 바람과는 달리 국제사회는 그다지 평온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불현듯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가 떠오르네요. 자신을 둘러싼 전 지구적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취임 1주일 만에 이슬람 7개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을 일시 금지하는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두 달 뒤엔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를 대체할 ‘트럼프케어’(미국보건법) 입법을 추진했습니다. 물론 둘은 각각 사법부와 입법부에서 막히면서 ‘미국은 삼권분립 국가’라는 기본 명제를 증명해야 하긴 했지만요. 시계를 2015년으로 돌려볼까요. 2015년 6월, 공화당 경선 출마 기자회견에 나선 트럼프는 “멕시코 이민자들이 마약과 범죄를 들여오고 있다. 그들은 강간범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멕시코 국경에 ‘만리장성’을 쌓아야 하며, 멕시코가 그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도 했죠. 미국-멕시코 국경은 총 길이만 서울~부산 간 거리의 7배가 넘는 약 3145㎞에 이릅니다. 트럼프는 이미 구조물이 세워진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1610㎞ 구간에 장벽을 설치한다고 밝혔는데, 전체 예산만 300억달러(약 33조9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토건 사업입니다. 실제로 지난 18일, 미국 국경세관보호국(CBP)은 멕시코 장벽 예비입찰에 참가할 건설 업체들에 시공계약 관련 내용을 통지했습니다. 보호국이 제시한 장벽 디자인 요구사항을 한번 살펴볼까요. △장벽 높이는 최소 9.15m(30피트) 이상일 것 △장벽은 지하 1.8m(6피트) 이상 파고들어갈 것 △사다리 등의 장비를 동원해서도 오르기 어려울 것 등 총 11가지 조건입니다. 아,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이 바라보는) 벽의 북쪽 측면은 색상·재질 등에서 미학적으로 아름다울 것’입니다. 강간·마약범을 비롯한 불법이민자들을 막기 위해 만든 벽에서조차도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세심함이란! 국경세관보호국은 1차 마감 기한인 29일까지 200여개 건설사가 예비입찰에 참여했으며, 4월1일까지 제출 기한을 늘린다고 밝혔습니다. 멕시코 장벽은 비용에 견줘 효용이 낮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감시카메라를 비롯해 불법이민자의 이동을 감시하는 기반 시설과 인력이 없을 경우, 장벽만으로는 불법이민자들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죠. 비용도 문제입니다. 지형이 험준한 산악 지역에 장벽을 설치하는 비용은 평지보다 곱절로 들고, 대부분이 사유지인 텍사스 국경 지대의 경우 막대한 토지 구입 비용과 주민들의 소송에 직면해야 합니다. 미국 공영 라디오 <엔피아르>(NPR)가 지난달 보도한 내용을 보면, 이미 텍사스 남부 국경에 설치된 울타리에 대해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만 해도 91건에 이른다고 합니다. 트럼프는 4월께 의회에서 장벽 건설 비용이 포함된 예산안이 통과된 뒤 바로 공사를 시작하고, 이후 멕시코가 비용을 상환하도록 압박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공개한 2018년도 회계연도 예산안에도 장벽과 관련한 예산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멕시코는 장벽과 관련해 어떠한 비용도 부담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고, 민주당 역시 장벽 건설 예산이 포함된 어떤 예산안도 거부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연방정부 ‘셧다운’(부분업무정지)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민주당 앞에서 공화당 일부 의원들도 멕시코 장벽의 현실성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북쪽만) 아름다운 벽’은 시작부터 험난해 보이기만 합니다. 생각해보니 ‘우리에게도 이런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트럼프 같은 금수저 부동산 재벌 출신은 아니었지만, 유력 건설사 사장 출신으로 자신의 성공 신화를 강조하며 대권에 나섰죠.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것처럼, 국가 경제도 부흥시키겠다’는 선거 구호도 트럼프와 비슷합니다. 건설사들만 배불린다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그는 멕시코 장벽 건설과 비슷한 토건 사업인 ‘4대강 사업’을 뚝심있게 추진했습니다. 트럼프 역시 멕시코 장벽을 통해 ‘녹조 라떼’에 버금갈 만한 자신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창조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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