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미국 워싱턴 하원에서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야심적 첫번째 법안이었던 ‘트럼프케어’(건강보험법) 처리가 무산되자, 트럼프 정부 안에서 서로 손가락질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심’을 보이지 않았던 하원의 1인자 폴 라이언 의장이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폭스 뉴스>의 ‘저닌 판사와 함께하는 정의’ 프로그램 진행자인 저닌 피로는 25일 밤 방송 중 “(법안 통과 좌절은) 트럼프 대통령의 실패가 아니다”라며 “라이언 의장은 하원의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공격에 나섰다. 특히 이 방송이 나가기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피로의 방송을 많이 시청해달라”는 트위터 글을 올린 것으로 드러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회적으로 라이언 의장의 사퇴를 촉구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검사 출신인 피로는 트럼프 대통령과 오랜 친분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파문이 확산되자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트는 저닌 피로의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것일 뿐 라이언 의장을 겨냥한 게 아니다”라며 수습에 나섰지만, 당내에서 라이언 의장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
‘왕실장’인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운영했던 극우 인터넷 매체 <브라이트바트>도 라이언 의장을 타깃으로 한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브라이트바트>는 “공화당 관리들과 백악관이 공개적으로 라이언 의장을 대체할 인물을 찾는 논의를 하고 있다”며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도 26일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로부터 라이언의 역할을 검토해보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라이언 의장 희생양 만들기’는 그에 대한 트럼프 최측근들의 깊은 불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화당 주류를 대표하는 라이언 의장은 지난해 대선 기간 동안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와 공동 유세도 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당장 라이언 의장이 사임할 가능성은 낮지만, 백악관과 당내 강경파로부터 외면당한 라이언 의장이 제대로 하원을 이끌어 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공화당에 대한 백악관의 압박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세제 개혁 등 ‘트럼프 국정과제’를 밀어붙이려면 공화당의 기를 꺾어놔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도 26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특정 정당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민주당 쪽과도 협력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이는 공화당 내 트럼프 반대파에 대한 압박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프리덤 코커스가 오바마케어를 살렸다”고 비난한 지 몇 시간 뒤엔 트럼프케어 저지에 앞장섰던 공화당 내 강경그룹인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 테드 포가 성명을 내고 “코커스를 떠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프리덤 코커스의 내홍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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