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미국 백악관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서명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반이민 행정명령’ 개정판에 서명했다. 지난 1월27일 서명한 첫번째 행정명령에서 미국 입국을 금지한 무슬림 7개국에서 이라크를 제외하는 등 몇가지 수정을 하긴 했지만, “화장만 고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서명한 개정판 행정명령은 이라크가 제외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이 대테러 작전에서 이라크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강력히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은 이슬람국가(IS) 격퇴 과정에서 통역·정보제공 등에 협조한 이라크인에게 특별비자를 발급해주는 유인책을 써왔다.
이란, 리비아, 시리아, 예멘, 수단, 소말리아 등 나머지 6개국에 대해서도 기존 비자 발급자와 영주권자에 대해선 미국 입국이 허용됐다. 기독교인에게 상대적으로 비자 발급을 유리하게 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조항도 삭제했다. 서명 즉시 발효됐던 첫번째 행정명령과 달리 16일부터 발효가 되도록 유예기간을 둬 초기 혼란도 피하려 했다. 시리아 난민에 대한 무기한 입국금지도 폐지하고, 난민 프로그램 검토 때까지 120일간 한시적으로 금지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공개 서명 이후,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존 켈리 국토안보장관 등은 합동 기자회견을 통해 새 행정명령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틸러슨 장관은 “외국인 테러리스트들의 미국 입국을 막기 위한 필수적 조처”라고 강변했고, 세션스 장관은 “우리에게 해를 끼칠 사람들의 입국을 막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켈리 장관은 또 <시엔엔>(CNN)에 출연해 “신원조회 절차를 신뢰하기 어려운 국가가 13~14개국 더 있다. 이들이 모두 이슬람권 국가는 아니다”라며 종교 차별이라는 비판에 물타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는 개정판 행정명령도 첫번째 명령의 핵심 문제는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 올해 11만명의 난민을 받기로 결정했지만, 이 수를 ‘매년 5만명’으로 절반 이상 줄인 것과 이라크의 경우도 정보공유 등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을 경우 다시 금지국가 목록에 올릴 수 있게 한 점 등을 지적했다. 마거릿 황 미국 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새 행정명령도 수많은 가족에게 극도의 공포와 불확실성을 야기시킬 것”이라며 “다시 한번 반무슬림 증오를 정책화했다”고 비판했다.
더욱이 켈리 장관은 <시엔엔> 인터뷰에서 멕시코 국경을 넘어오는 불법이주를 막기 위해 국경에서 부모와 아이를 떼어놓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어린이를 불법입국 수단으로 악용하는 점을 막기 위해 (추방 전까지) 자녀들을 미국 내 아동보호시설에 별도로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오바마 정부도 검토한 바 있으나, 부작용이 많고 인권탄압적 측면이 커 시행하지 않았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첫번째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해 법적 소송으로 맞섰던 주 정부들도 다시 법적 조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수정 행정명령도 제2의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밥 퍼거슨 워싱턴주 법무장관은 이번에도 수정된 내용에 여전히 법적 우려가 남아 있다며 “행정명령을 검토하고 어떤 조처를 취할지 이번주 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매사추세츠, 버지니아주 법무장관 등도 같은 입장을 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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